차가운 것이 덮어줄 때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세상이 온통 하얗다. 손을 내밀면 손바닥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았다가 체온에 닿는 순간 물이 되어 스며든다. 차갑다. 겨울 눈이란 본디 차갑고 시린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눈 내린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아이들에게 두꺼운 패딩을 입히고 목도리를 감아주고 장갑을 끼워주는 동안, 아이들은 벌써 마음이 밖으로 나가 있다. "조심해, 미끄러워." 당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간다. 눈밭을 향해 달려가는 뒷모습이 작고 둥글다. 뒤뚱거리지만 기쁨에 차 있다.
마당에 나가보니 이미 눈사람이 만들어지고 있다. 큰아이가 눈을 둥글게 뭉쳐 데굴데굴 굴리니 눈덩이가 제 몸집을 키우며 불어난다. 작은아이는 옆에서 지난주 다이소에서 산 오리 틀을 꺼내든다. 눈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뒤집어 놓고는, 틀을 떼어낸다. 툭, 하고 떨어져 나온 자리에 눈오리가 나타난다. "아빠 봐, 오리!" 천 원짜리 플라스틱 틀이 빚어낸 작품을 아이는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자랑한다. 아이 얼굴이 환하다.
창고에서 작년 겨울에 샀던 썰매를 꺼내온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썰매 위에 올라앉고, 나는 줄을 잡는다. "출발!" 하고 눈밭을 가로지르니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하얀 들판 위로 퍼진다.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지저분했던 땅도, 앙상했던 나뭇가지도, 낡은 담장도 눈 아래 고르게 가라앉는다. 어제까지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오늘 발자국만 남는다. 아이들 발자국, 아내 발자국, 그리고 내 발자국. 우리 가족의 흔적이 눈 위에 또렷하게 새겨진다.
눈은 차갑지만 눈이 불러오는 것들은 따뜻했다. 눈사람을 만들며 손을 맞대는 온기, 썰매를 끌며 나누는 웃음, 추워서 서로를 껴안는 체온. 우리는 추위를 핑계 삼아 더 가까이 붙는다.
아이들이 빨개진 볼로 집에 들어온다. "아빠, 손 시려." 작은아이가 손을 내민다. 얼어붙은 작은 손을 내 손으로 감싸 준다. "따뜻해?" "응!" 큰아이는 창밖을 보며 묻는다. "내일도 눈 올까?" 그 눈빛이란. 추워도 좋다, 손이 시려도 좋다, 내일도 눈이 오면 좋겠다는 얼굴이다.
저녁이 되어 창밖을 보니 눈이 그쳤다. 마당 눈사람이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다. 조금 삐뚤어졌지만 씩씩하게 서 있다. 옆에는 아이가 만든 눈오리도 있다. 오리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거기 있다. 하얗게 덮인 마당이 고요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