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얼굴에 피는 방학
둘째 아이 서하는 초등학교 특수반에 다닌다. 남들보다 느린 속도로 세상을 배우는 아이 덕분에, 나는 여느 학부모보다 학교 문턱을 자주 넘나 든다. 선생님과 마주 보면 대개 아이 돌발 행동, 더딘 학습, 친구 관계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학기 중 선생님 얼굴은 늘 팽팽하다. 직업상 친절함 뒤로, 고단함이 숨어 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긴장하는 기색이 그분 얼굴에 얇게 내려앉아 있다.
그런데 방학 전 마지막 주가 되면, 묘하게 달라진다. 일 년 내내 굳게 닫혔던 빗장이 풀리듯, 선생님 표정이 환해진다. 아이가 평소처럼 행동을 해도 "서하가 최고로 잘했어요" 폭풍 칭찬을 해주거나, 준비물을 빠뜨려도 선생님은 "괜찮아요, 아버님." 하며 웃는다. 그 웃음은 넉넉하고 부드럽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직전 사람이 짓는, 안도가 섞인 표정이랄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 선생님이 부럽다.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가르치고 책임지는 일을 하는 이에게 방학이란,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긴 쉼표가 아니던가. 매일 아침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자기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그 긴 휴식이 선생님 환한 얼굴 뒤로 어른거린다. 계속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그 '멈춤'이, 선생님이라는 이름 뒤 숨겨진 가장 큰 보상처럼 보인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환한 얼굴은 지난 일 년을 버텨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다. 내 아이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선생님은 교실 안 수많은 아이, 게다가 손길이 더 필요한 내 아이까지 품고 씨름해오지 않았던가. 선생님 얼굴이 그토록 밝아 보였던 건, 그만큼 짊어졌던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시간이 있어야 다음 학기 다시 아이들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교문을 나서면, 아이 손을 잡는 건 이제 내 몫이다. 예전 같으면 '이 긴 방학을 어찌 보내나' 하며 한숨부터 쉬었겠지만, 이번엔 마음을 좀 달리 먹어본다. 선생님이 그토록 기다린 방학이라면, 우리 아이에게도 분명 기다림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학교라는 규율과 단체 생활 속에서 아이 또한 알게 모르게 숨이 찼을 것이다.
선생님이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는 동안, 우리는 우리 속도로 이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 퉁퉁 부은 눈으로 마주 보고 낄낄대기도 하고, 공부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한 권 더 읽어주며 뒹굴거려 볼 생각이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느라 애썼다면, 방학은 부모인 내가 아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기회다.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그저 개구쟁이 내 아이로 뛰놀게 할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선생님 얼굴에 피었던 그 환한 웃음이, 어느새 아이 얼굴에도, 그리고 내 마음에도 옮겨 붙은 모양이다. 선생님에게는 휴식이, 우리에게는 함께 부대끼며 쌓아갈 시간이 기다린다. 각자 자리에서 각자 방식으로 맞이하는 방학. 아이 손을 꼭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