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른 커피

정답이 없는 삶에 대하여

by 온곁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 지 이십 년쯤 됐다.


순서는 늘 같다.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간다. 드립퍼를 컵 위에 얹고 종이 필터를 올린다. 뜨거운 물을 한 번 부어 종이를 적신 뒤, 그 물은 버린다. 갈아놓은 원두를 담고, 적당한 온도의 물을 살며시 부어 원두가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원두가 숨을 들이쉬듯 천천히 부풀면, 그때부터 원을 그리며 물을 붓는다.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향이 피어오르고, 손목은 의식적으로 천천히, 고르게 돈다. 전부 해봐야 삼사 분이면 끝난다.


그런데 이십 년을 같은 순서로 내렸어도, 매번 맛이 다르다. 변수가 너무 많다. 물의 온도, 그날의 습도, 원두가 볶인 지 며칠이 지났는지, 얼마나 굵게 갈았는지, 어느 나라에서 온 원두인지, 내리는 속도. 하나하나는 작은 차이다. 그것들이 겹치면 전혀 다른 커피가 된다. 같은 원두로 같은 드립퍼를 써도, 어떤 날은 부드럽고 어떤 날은 조금 쓰다. 날씨가 흐리면 왜인지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서두르면 물이 고르게 돌지 않는다. 내 손의 컨디션이 맛에 들어온다.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이 내리지 못한다.


처음엔 그게 불만이었다. 어제의 그 맛을 오늘도 내고 싶었다. 기준을 잡고 거기에 가까워지는 것이 잘 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맞추려 했다. 온도계를 쓰고, 저울을 올려놓고, 초를 세었다. 그래도 달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달라지는 것을 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 커피는 오늘 커피이고, 어제 커피는 어제 커피인 것이다. 같을 수 없다. 한 모금 마시고, 오늘의 맛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물을 조금 더 붓는다. 그뿐이다.


삶도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계획을 세운다. 속도를 정하고, 결과를 예측한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곳에 와 있을 때가 있다. 계획했던 자리가 아니라, 바람이 데려간 어딘가에. 그게 두렵고 불안한 사람이 있다. 당연한 일이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반면에 그 예측 불가능함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어제와 다른 맛을 기대하듯, 낯선 곳에 서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불안한 사람도, 기꺼이 낯선 자리에 서는 사람도, 결국 같은 하루 위에 발을 딛고 산다. 받아들이는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다르진 않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우리는 모두 오늘을 건너고 있다.


완전히 같은 커피는 없다. 그러니 완전히 같은 하루도 없다. 오늘 내려진 이 맛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내가 정한다. 물이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나는 그냥 그 향을 맡는다. 오늘은 어떤 맛일까, 기대하면서.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커피가 없듯, 완벽하게 정해진 삶의 정답도 없습니다.
계획에서 조금 벗어나면 벗어난 대로, 약간 쓴맛이 나면 나는 대로.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오늘이라는 하루를 음미하면 그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