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본정통
중학교를 가려면 두 번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갈아타는 정류장이 청주 중심가 본정통 작은 백화점 앞이었다. 지금은 일본식 표기라는 이유로 '성안길'로 바뀐 그곳. 그 시절 청주에서 유일한 번화가였다.
번화가라는 이름값을 하듯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약속을 잡을 때면 자연스레 "백화점 앞에서 보자"는 말이 나왔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어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삐삐도 없었다. 집 전화로 약속을 잡은 뒤 무작정 나가야 했다. 만약 상대가 나오지 않으면 그냥 헛걸음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니 가장 사람들이 접하기 쉬운 곳, 누구나 아는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 앞은 그런 곳이었다.
나는 거기서 약속한 사람들의 만남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마땅찮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람 보는 게 재미있었다. 일부러 조금 일찍 나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집에 가려면 어차피 거기서 버스를 기다려야 했으니, 그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이십 대, 삼십 대로 보이는 친구, 연인이 백화점 앞에서 만났다. 누군가는 일찍 나와 시계를 들여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고, 누군가는 늦게 나타나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미안하다는 듯 뛰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서로를 보자마자 얼굴이 환해졌다. 술 한잔하기 위해 만난 남자 친구는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듯한 연인은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걸음을 뗐다.
나는 그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반가움, 기쁨, 설렘, 약간의 아쉬움. 다양한 감정이 그곳에서 살아 숨 쉬었다. 그들은 각자 이유로 그곳에 있었고, 각자 사연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나는 그들 마음을 상상하며 동화되었다. 그러면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도.
그때는 몰랐다. 내가 왜 그렇게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좋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백화점 앞은 단순한 약속 장소가 아니라, 사람 마음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기다림과 만남, 반가움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곳. 사람들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기를 바라고,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사실. 그게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걸.
지금은 그 백화점 간판도 바뀌었고, 풍경도 달라졌다. 휴대폰이 생기면서 굳이 특정 장소에서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 "어디쯤 왔어?" "조금만 기다려" 같은 말로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확인한다. 더 편해졌다. 하지만 작은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백화점 앞에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던 그 얼굴. 멀리서 친구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던 그 순간. 그런 것.
가끔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보다가 본정통 백화점 앞 풍경 사진이 나오면, 나는 한참을 들여다본다. 그 작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모였던가.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웃고, 헤어진다. 백화점 앞 정류장은 그런 삶이 펼쳐지는 무대였다. 나는 그 무대 한쪽에서, 관객처럼 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렇게 나는 사람 사는 공간에 함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