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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하루 onharuoff Aug 12. 2019

28. 기생충의 그 찝찝함의 끝

늦은 후기

기생충 영화 개봉 당시 보고 작성한 후기를 묵혀 두었다가 이제야 펼친다.




난 스포일러를 사랑한다.

개봉날 보는 영화가 아니면 보기 전에 각종 후기를 섭렵한 뒤 영화를 보는 편이다. 즉 결말을 글로 다 읽고 영화를 본다. 이유는? 어떤 영화든 결말은 항상 궁금하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다.


그런데 이 영화 기생충은 감독과 배우만 알았을 뿐 줄거리 조차, 배우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본 영화이다. 무슨 무슨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이런 류의 영화는 호흡이 길다. 개인적으로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영화, 처음에 서서히 그리고 중간 클라이맥스 마지막 내려가는 기승전결 형태의 영화를 좋아한다.


호흡이 긴 영화는 거기에 빠져들지 않으면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긴 호흡에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생각해보니 봉 감독의 영화는 이영화가 처음이다.


짱, 이성, 그리고 우울함

기생충 영화를 보고 나오는 영화관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보고 나온 나도 찝찝함에 불편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거꾸로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대한 후기, 해석 등의 글을 찾아 읽었다. 기본적인 영화 속 대사나 소품 등에 대한 의미 등이 무엇인지, 나처럼 찝찝함을 느낀 이들이 왜 그런지 등 다양한 후기 글을 보았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 역시 봉준호 짱, 배우 연기 짱!

사회의 부조리를 현실을 다양한 매개체로 연출한 감독이 멋지다와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훌륭하다는 평의 글이다.


두 번째, 극히 이성적 분석의 글

냄새로 나누는 계급, 돌의 의미, 꼽등이가 뜻하는 것, 넘지 말아야 할 선등 영화 속에서 연출된 것을 샅샅이 분석한 후기이다. 이런 글들은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그리고 아 그게 그런 의미구나 하고 부족한 퍼즐을 맞추게 된다.


세 번째는 찝찝함의 이유가 무엇인가의 글

이 후기가 가장 많았다.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거나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찝찝하고 개운치가 않다는 것인데, 그런 의견에 동의하면서 내 경우는 다음의 4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지하철 냄새, 반지하 냄새 등 냄새가 계급을 결정짓는 것이다가 불편한데 그 이유가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 난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지하철을 이용했다) 일 것이고,  그들이 곧 바퀴벌레나 반지하 생활을 하는 이들과 동일시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현실을 알고는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사살, 희망의 끈을 놓게 만드는 찝찝함이었다. 계급의 선을 그어버리는 영원히 기생충으로 살아야 해라는 메시지로 보였다.


그리고 셋째는 박사장의 죽음으로 인해 그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글을 보지 못했다. 박사장의 아들은 생일 때마다 일어난 귀신이나 살인으로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살 것이고, 딸은 자신이 사랑했던 과외선생이 사기꾼에 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아내는 자신의 남편의 죽음과 정신적 충격을 갖는 자식 둘만이 남겨졌다. 그 아내가 태생적 금수저가 아니라면 남편의 죽음과 함께 그들도 반지하로 흘러들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찝찝함이 있었다.


마지막은 기택이 박사장을 죽이기 전 상황이었다. 지하에 살던 문광의 남편이 기택의 딸을 칼로 찔렀다. 그 씬에서 기택은 계속 멍하니 그 상황을 쳐다만 보고 있다. 엄마인 충숙은 딸을 찌른 이에게 달려들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리고 문광의 남편을 찌른다. 그때까지도 기택은 그냥 있는다.


그를 움직이게 만든 건 딸의 죽음도, 아내가 죽을 수도 있는 싸움의 현장도 아니다. 박사장이 키를 꺼내면서 코 막는 모습에서 갑자기 박사장을 죽인다. 가족인 죽어가는 것에는 무능력하게 있다가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선을 넘은 행동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도 가족의 죽음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 하다고 여긴 것아 보였다.

뉴스에 회사에서 잘린 분풀이를 아무 상관없는 옆집이나 길거리 사람을 해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정곡을 찔렸기 때문에 아프지만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거나 보여주는 여운이 남는다면 이 영화는 그러한 여운이 없었기 때문에 착잡했던 것 같다. 어쩜 현실은 더 잔혹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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