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에야 들려온 지인들의 진짜 속마음

by 온호류



2024년 3월 27일 수요일

이혼 서류 접수 다음 날 (남이 되기까지 D-35)



“가혜야, 서류 냈다니까 하는 얘긴데, 진짜 잘 헤어졌어.”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서류 접수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언니가 한 말이 너무 의외였다.

언니도 이혼 경험이 있다 보니 이혼 결정을 내리고 갈팡질팡하던 시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냥 내 편만 드는 게 아니라 때론 (전)남편 입장에서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해줘서 자기 연민과 피해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 고마운 언니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왜 잘 헤어졌는지에 대한 얘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언니의 속마음에 대해.


나는 너무 놀랐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언니의 이런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이후에도 다른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적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이혼 전에는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 말이다.






남편과 싸우고 내가 아무리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놔도 지인들은 나를 위로할 뿐 절대 나서서 남편 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쪽에 가까웠다. 그랬던 사람들이 내가 이혼했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사실..."이란 운을 띄우며 숨겨온 얘기를 하나둘 꺼내는 거다.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기분이 아주 묘했다. 나에겐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그의 싸함이 타인에겐 다 보였다니.


남편 욕은 나만 할 수 있는 게 국룰이다. 내 가족 욕은 나니까 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사람이 하면 당연히 기분 나쁘다. 그런데 이혼한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살짝 언짢으면서도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인정받는 거 같아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잘한 결정이라는데 지인들도 동의하는 듯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는데….'라며 그를 두둔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이상한 양가감정은 참으로 혼란스러운 것이었고,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욕해줘서 고마운데 듣기 거북한 모순적인 감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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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엄마에게서 이모가 한 말을 전해 들었을 때였다. 내가 천사 같다고 생각하는 선하디 선한 이모가 내 이혼 소식을 듣고 잘했다며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거다. 남편과 함께 이모네 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 곰곰이 떠올려 봤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딱히 못난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 어른들 눈에는 됨됨이나 인성 같은 게 다 보이는 건가?


이모 외에도 친한 지인들이 꺼낸 그의 얘기를 듣고 나는 대체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싫어했던 모습에 대한 얘기가 많았으니까. 그러면서 오래전 절교한 한 친구가 떠올랐다. 살면서 유일하게 절교를 선언한 아주 친했던 친구.






초,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였다.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고2부터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알고 지냈고,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기던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나는 그 친구에게 다신 보지 말자고 통보했다.

그 친구는 내가 가장 편하고 친하다는 이유로 나를 쉽게 여겼다. 다른 친구와의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려 하면서 나와의 약속은 쉽게 깨버렸고, 점점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지인 중 날 이렇게 자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은 이 친구가 유일했다.


내가 절교를 마음먹은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친구를 욕할 때, 더 이상 이 친구 편을 들어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아니야, 그럴 애 아니야. 너희가 잘못 안 걸 거야." 이렇게 변명하는 게 아니라

"나도 그 점 때문에 화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라는 말이 나올 때.


내 안에 이미 그 친구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쌓여서 친구를 욕하는 누군가에게 맞서지 못하고 오히려 동조하게 될 때, 나는 이 친구와 관계를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감싸주고, 믿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함께 욕하고 싶은 친구가 어떻게 가장 친한 친구인가? 그게 무슨 친구인가? 생각이 드는 거다.


지인들에게 남편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길 잘했다고. 나는 남편의 편에서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동조할 뿐. 이미 내 안에는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그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풀어보려 노력해 봐도 불만과 부정적인 감정이 자꾸 커져서 그의 모든 장점이 안 보이는 지경이라면, 그때가 관계를 끊어야 하는 타이밍 아닐까? 미워하는 감정으로 더는 나를 망치지 않기 위해, 나를 위해. 더 이상 그가 미움받는 것을 멈추기 위해, 그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타이밍을 한참 놓치긴 했어도 잘 헤어졌다. 애쓴다고 모든 관계가 다 좋아지는 건 아니다. 때론 쿨하게 절교를 선언하는 것이 양쪽 모두가 광명 찾는 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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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결혼 전 남편을 소개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대표적으로 우리 엄마가 그랬고 (이것 때문에 엄마랑 크게 싸웠다) 위에서 언급한 친한 언니가 그랬다. 내 짝이 아닌 거 같다며, 결혼하면 엄청 싸울 거 같다고 했다.


결혼할 때 친한 친구 셋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를 아끼는 세 명의 눈에 별로인 사람은 아무리 내 눈에 괜찮아 보여도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면 별로인 경우가 많다는 거다.

지인들의 반응을 보며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겠구나 싶었다. 나는 사랑과 정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끼고 그를 봤겠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의 민낯이 사실적으로 보였을 거다. 나에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그의 매서운 눈빛, 조금이라도 짜증 나면 바로 굳어버리는 표정, 그리고 그의 냉소를 가리기 위해 발달한 듯한 과한 예의와 친절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얘기를 나에게 전하지 않고 그동안 꼭꼭 숨겨준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나조차도 남편의 단점 앞에 흐린 눈을 하려고, 장점만 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지인들로부터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들었다면 더 힘 빠지고 슬펐을 거다. 하지만 속 깊은 지인들은 5년간 나를 감쪽같이 속여왔다. 내가 부디 그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예감이 틀렸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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