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것도 엄마에게.
당연한 얘기지만 엄마와 나는 매우 닮았다. 엄마 이름은 '정자'인데, 어릴 적부터 친척들에게 '새끼 정자'라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외모와 성격, 생활 습관부터 식습관까지 나는 엄마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나, 꾸물거리느라 약속 시간에 잘 늦고 서두르는 것도 엄마를 쏙 빼닮았다. (나는 살면서 엄마가 친척 결혼식에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밖에 낙천적이고 잘 웃는 것, 자기중심적이고 당찬 성격도 엄마를 닮았다.
팔이 부러진 엄마의 병시중을 들러 올라오는 길에 커진 싸움이 이혼으로 번진 거였다. 그래서 이혼 조정 기간 내내 엄마의 팔이 되어 엄마와 붙어 지냈다. 생각해 보면 엄마랑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이 보낸 적이 없다. 고등학생 때부터 방과 후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생 때도 일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집에 붙어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2년 정도 미국과 호주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며 영어를 배웠고, 대학원은 워낙 바빠서 실험실 좀비처럼 지냈으니 고등학생 이후로 집에선 잠만 잔 셈이다.
지금까지 엄마랑 싸운 적 한번 없던 건 둘이 성격이 비슷하고 잘 맞아서인 줄 알았으나, 그냥 붙어있던 적이 없으니 부딪힐 일이 없던 거란 걸 이번에 깨달았다. 엄마와 같이 살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됐을 무렵, 엄마와 충돌하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전)남편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나의 모습을.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역지사지'만 한 게 없다. 반대 입장이 되어보기 전엔 100% 그 마음을 헤아리기 힘든 거다. 그런 의미에서 흔히 '거울 치료'라고 하는 심리극 치료법, '거울 기법'만큼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데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남편이 그렇게 말해도 와닿지 않던 것이 엄마를 통해 똑같이 당해보니 단번에 이해된 것만 봐도 그렇다.
언니 부부가 도착하면 다 같이 브런치를 먹으러 가기로 한 참이었다. 나갈 준비를 하려고 엄마를 찾으니 부엌 청소를 하고 있는 거다.
"엄마, 그걸 왜 지금 해? 언니 오면 바로 나가자고 했잖아. 빨리 옷 입어."
"알았어."
먼저 준비를 마친 나는 내 방에서 할 일을 하다가 언니가 올 시간이 다 됐길래 엄마한테 갔다. 그런데 엄마가 준비를 하나도 안 한 채 아까 하던 청소를 계속하고 있는 거다.
"엄마! 뭐 해? 빨리 준비하라고 했잖아. 언니 다 왔다는데 뭐 하는 거야!?"
"아니, 좀 늦게 나가면 어때서! 하는 김에 청소하는 거지! 네가 할 것도 아니면서 뭐 이렇게 닦달이야!"
엄마는 되려 나에게 성질을 냈다. 나가기로 한 시간을 안 지키고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건 엄마면서 닦달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는 거다.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어이없음보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남편에게 성을 내던 내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1년 전쯤, 편집 중인 유튜브 영상만 업로드하고 같이 동네 카페에 가자고 말해둔 상황이었다.
나가기로 했던 시간이 다 됐는데 아직 책상에 앉아 있는 내게로 와 남편이 물었다.
"얼마나 걸려?"
"아, 미안! 영상이 길어서 인코딩이 좀 오래 걸리네? 20분만!"
20분 뒤에 그가 다시 와서 물었다.
"멀었어?"
"아, 미안! 올리려고 보니까 오타가 있어서 다시 인코딩하고 있어. 진짜 딱 20분만!"
20분 뒤, 그는 더 이상 물으러 오지 않고 거실에서 핸드폰을 하며 날 기다렸다.
결국 나가기로 했던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업로드를 완료하고선 거실로 나갔다.
"미안 미안, 다했어. 빨리 나가자!"
"……."
남편은 이미 기분이 상해있었고 결국 나에게 화를 냈다. 이런 적이 꽤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짜증 날 만했다. 앞서 얘기한 모녀의 공통점, 꾸물거리고 약속 시간 못 지키는 것을 그는 정말 싫어했는데,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라 자주 우리의 싸움거리가 되곤 했다. 처음엔 미안하다며 눈치를 보다가 그가 기분을 안 풀고 계속 짜증을 내면 내 기분도 점점 언짢아지는 거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하다 그런 거잖아. 그래서 미안하다고도 여러 번 했고. 꼭 그렇게까지 뭐라고 해야겠어? 좀 이해해 주면 안 돼? 영화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니고 그냥 동네 카페 가기로 했던 거잖아. 카페 안 갔음 어차피 집에서 핸드폰 보고 쉬었을 건데 결과적으로 똑같잖아."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이었다.
'뭐 이런 걸로 저렇게 화를 내지? 난 남편이 약속 시간에 늦어도 다 이해해 줄 수 있는데. 그냥 할 일 하거나 책 보면서 기다리면 되잖아. 나도 자기 화 많은 거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데, 좀 그러려니 해주면 안 되나? 고의로 그러는 것도 아닌데 맨날 꼭 저렇게 성질부려서 내 기분까지 다 망쳐놔야 속이 후련한가?'
나름 억울했고 서운했다. 일하느라 그런 건데 이해 못 해주는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나였으면 넘어갔을 일에 그가 일일이 화를 내는 통에 우리가 맨날 싸우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로 인한 거울 치료 후 돌아보니 이건 엄연한 내 문제였다. 물론 화내고 짜증 내는 남편의 반응이 모범적인 건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그의 화를 돋운 원인이 나에게 있다면 성심껏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게 도리였다. 내가 잘못해 놓고 그의 태도를 탓하는 건 준비를 안 해놓고 닦달하는 나를 탓하는 엄마와도 같은 거였다.
나가자고 한 시간을 스스로 어겨놓고 그의 분노를 문제 삼는 내 사고방식은 남편의 화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내가 원인 제공을 한 거면 입 다물고 있어야 했는데, 화내고 짜증 내는 그의 태도를 참지 못하는 걸 넘어 그의 속 좁음을 뭐라 했으니 그의 입장에선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을 거다.
그는 자주 말했다. 자기가 용서하기도 전에 "그럴 수도 있지"라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그 뻔뻔함이 싫다고.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내 뻔뻔함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분노조절장애가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자기 문제를 덮고자 나를 탓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뻔뻔함에 치가 떨려보니 남편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된다. 그 순간만큼은 난 최악의 배우자였다.
이전 연재 글에서 언급했듯 '버럭이'를 증오하는 나는, 어느새 나의 잘못에서 그의 화내는 모습으로 비난의 초점을 옮겨버렸다. 내가 잘못했든 안 했든 버럭 하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친 거다. 그의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탔을까. 잘못은 내가 해놓고 화내는 자기를 탓하니 말이다.
간간이 엄마와 충돌해 오던 중, 이날은 급기야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까지 했다. 발단은 별거 아니었으나 엄마의 뻔뻔한 태도와 자신이 잘못해 놓고 나를 탓하는 그 패턴이 지긋지긋했다.
깁스 때문에 운전을 못 하는 엄마의 운전기사가 되어 엄마를 마트 앞에 내려주고, 빵집을 들렀다가 다시 엄마한테 가는 길이었다. 어디로 데리러 가냐는 물음에 엄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아파트 이름을 대거나 사거리 신호를 얘기했다. 엄마한테는 익숙한 길이겠지만 이제 한 달밖에 안 된 내가 명칭을 알 턱이 없었다. 알아듣게 설명해 달라고 얘기했는데 왜 이렇게 못 알아듣냐며 엄마는 또 내 탓을 하며 성을 냈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는 차에 타자마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버럭 화를 냈다. 참다 참다 못 알아듣게 설명해 놓고 왜 짜증이냐며 나도 한 소리 했다. 그랬더니 엄마의 비난은 더 격해졌고 우리 모녀는 그렇게 처음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나는 경태를 산책시키고 들어가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걸으며 화를 식힌 뒤 나를 돌아봤다. 스스로 화가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었는데, 그 말은 틀린 거였다. 화가 없는 게 아니라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옆에 없었던 거였다. 나도 머리끝까지 날 화나게 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면 남편처럼 변할 수도, 욕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를 분노케 하는데 내 책임이 컸다는 것을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깨닫고 있었다.
엄마와 충돌하면 할수록 점점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커졌고, 그에게 전화해서 사과하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화딱지 났을까, 진심으로 미안했다고 그때 풀어주지 못한 마음을 지금이라도 다독여 주고 싶었다.
이틀 뒤, 또 한 번 엄마랑 크게 싸울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