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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나의 잘못된 생각

by 온호류



미안하지만, 미안할 수 없는 너에게.



옆 실험실 동생들과 이상형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나는 너의 이름을 꺼냈어.

"나는 ㅇㅇㅇ선생님 같은 스타일 좋아하는 듯?"

"오- 누나! 대시 한번 해봐요! 여자친구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며칠 뒤 정기교육 강의실에서 너를 보았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어.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넸지.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당황하던 너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해. 교육이 끝나고 같이 지하철로 걸어가다 시간 괜찮으면 같이 저녁 먹자는 나의 제안에 너무 좋다며 활짝 웃던 너의 표정도 잊을 수가 없어.


우린 이토록 운명적으로 만났고, 서로 강하게 끌렸고, 많이 사랑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끝나게 된 걸까. 너와 마지막으로 우리 잘 살자며, 잘 살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 포옹을 나누던 그 순간까지도 원인을 알지 못했어.


왜 너와 대화를 하면 자꾸 싸움으로 번지는지, 너를 비난하려고 한 얘기가 아닌데 왜 너는 자꾸 화를 내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고, 너무 답답했고, 나는 늘 억울했어.


그런데, 너와 헤어지고 나니까,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당시의 우리를 바라보니 이제야 알 거 같아. 특히 나의 생각을 꿰뚫어 보니 네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우리의 대화는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었는지 이제서야 알겠어.


왜 시작은 늘 따뜻한 음식과 맛있는 술이었는데, 끝은 항상 다 식은 음식과 쓴맛만 남아 버려지는 술이었는지. 드디어 알 것만 같다.



나는 너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너를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거 같기도 해.

행여나 밖에서도 이런 언행을 보이면 어쩌나, 내 얼굴에 먹칠하는 거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 봐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몰라.


나는 너에게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었지만, 이 질문은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이렇게 번역될 여지를 잔뜩 품고선 너에게 전달됐겠지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든 네 생각은 틀렸어. 네가 뭐라고 대답하든 반박해 줄게.'


왜 네가 대답하기 싫다고 했는지, 나보고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와야 대화가 끝나는 거 아니냐 물었는지. 그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어.

"나는 정말 네 생각이 궁금한 거야"라고 말했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아니야. 그냥 너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던 거였어.


미안하다. 진심으로, 내가 정말 미안해.

저런 생각을 가지고는 제대로 된 대화가 안 되는 게 당연했어. 네가 의식을 했든 안 했든 느꼈을 거야 나의 의중을. 그래서 너도 모르게 화가 난 걸지도 몰라.


'너를 화나게 하는 내 탓'이라는 너의 말에 '화가 많은 네 탓'이라고 반박했고, '말도 안 되는 남 탓'하지 말라며 같이 날 선 말을 해댔지.

네가 분노조절을 못하는 걸 왜 내 탓으로 돌리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또한 잘못됐다고, 부끄럽다고 생각했어.


이제야 보여. 널 화나게 한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너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너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나의 잘못된 생각 그 자체였구나.

말하지 않았으니 네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너는 이미 다 느끼고 있던 거야. 내가 너의 생각을 무시하고 있단 걸.



대학원을 그만두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던 나를 다그치는 너에게, 날 믿고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토로했었지. 근데 이제 보니 나도 그러고 있었더라. 아니 너보다 더 악질이었는지도 몰라.


페미니즘으로 논란된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한 여배우를 욕하고 꼴 보기 싫다 얘기할 때, 나는 왜 너를 믿고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이렇게 시간이 지나 나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거처럼, 너 또한 너의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발전하는 사람이라 믿고, 기다려줬어야 했는데.. 난 너를 믿지 못했어.


그 여배우의 열혈팬도 아니면서, 그 여배우보다 네가 나한테 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

왜 너의 편이 아닌 그 여배우 편에 서서 너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해야만 했을까?


아마도.. 너의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내가 너를 떠날 수밖에 없던 그런 문제행동들이 생긴다고 오해했던 거 같아. 너의 생각과 그런 행동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너의 생각을 바로잡으려 했으니 얼마나 숨 막혔을까, 얼마나 서운했을까….


내가 참을 수 없던 너의 행동을 유발하는 데 있어 나의 태도가 한몫했다고 인정하긴 싫어. 마치 매 맞는 아내가 매 맞을 짓을 했다고 인정하는 거 같아 그럴 수 없겠어. 하지만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은, 나의 오만함이 너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은 백번 인정할게.


연재를 해오며 너에게 미안한 것들이 참 많았지만, 너에게 사과받지 못한 많은 과거의 아픔 때문에 마냥 미안할 수도 없겠더라. 나는 그래서 이 글로나마 미안함을 전할 수밖에 없겠다.


진심으로 미안해.

너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단정 지었던 내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해. 미안하다.




상대방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기만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실 잘못된 생각이 어디 있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처럼 시간이 지나서 보면 틀린 생각이었을지언정 지금의 나에게는 다 맞는 생각인 것을.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던가,

관계도 마찬가지구나, 헤어지니 비로소 보인다.

참 아쉽다. 소중한 것은 늘 잃고 나서야 깨닫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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