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결혼 예찬론자이고, 결혼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인생의 한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비혼주의인 사람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으론 조금 안타깝다.
결혼과 이혼을 겪어본 후 "아.. 난 누구와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보다"하고 단념하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일인데, 겪어보지도 않고 힘들 거 같다는 생각만으로 비혼을 결심하는 건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마치 "어차피 저건 신 포도일 거야"라며 포도 따기를 포기한 여우처럼, 극강의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는 비극처럼 느껴진달까?
둘이라서 싸우지만 둘이라서 행복하고, 둘이라서 괴롭지만 둘이라서 가능한 많은 것들이 결혼 생활에 존재한다. 결혼 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깊은 안정감과 잠깐 머물다 떠나는 행복이 아닌 은은하게, 끊임없이 샘솟는 충만한 행복감. 친구가 가장 소중하던 내가 이 세상에 남편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결혼이 주는 관계의 특별함은 연인사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 얘기만 듣는다면 결혼은 무조건 좋은 것인데 왜 사람들은 결혼이 미친 짓이라고, 지옥이라고 할까?
또한 나는 그 좋은 결혼생활을 버리고 왜 이혼을 선택한 걸까?
그건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이고 모두가 '금쪽이'이기 때문일 거다. 배우자와 갈등 없이 지내는 게 힘들기 때문이고, 갈등을 힘들이지 않고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드물기 때문일 거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갈등을 잘 해결하는 법, 화를 다스리는 법, 사이좋게 화해하고 대화하는 법을 등을 올바르게 배운다면 결혼생활이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는 결혼을 통해 비로소 완전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서로의 부족함을 자각하게 하기도, 싸우기도 하고, 보듬어주기도 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깨우치고, 서로에게 자극받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 가는 것이 결혼이 아닐까?
요즘 성별 갈등과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원인에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것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혼을 하면 이해심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평소에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고 기겁하는 일을 내 배우자가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럴 수도 있구나….' 이해하게 된다. 혹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흔히 나의 한계와 바닥을 보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 저럴 수 있냐던 그 짓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겸손해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인간인지 알게 하는 데 결혼만큼 좋은 게 없다. (이혼까지 하면 극강의 겸손함을 갖출 수 있지만 추천하진 않는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짧은 영상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같이 꽃집을 운영하는 부부의 아내분이 올린 영상이었다.
남편분이 커다란 화분(비싼 식물인 듯)을 어딘가에 올려놓았고, 아내분이 거기다 놓으면 떨어질 거 같다고 내려놓으라 했는데 남편분이 괜찮다며 계속 화분을 올리고 작업을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가지러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바람이 세게 부는 바람에 화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 영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면서 조회수가 몇백만이 되었고, 댓글엔 남편에 대한 욕이 한가득 이었다.
"저런 답답한 남자랑 왜 살아요?"라는 댓글이 있었는데, 아내분이 단 답글이 참 인상적이다.
"남편도 저 같은 여자랑 살아주는걸요"
누군가 결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이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가 각자의 부족함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불완전한 나의 흠들을 마치 퍼즐조각 맞추듯 채워주는 사람을 만나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가며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이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나의 부족함을 알지 못했던 것' 즉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연재를 하면서 참 많은 것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결국 "내가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지, 그리고 그런 못난 나를 사랑해 주는 이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이것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결혼을 통해 더 큰 행복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글을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나의 5년이 헛되지 않아 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연재를 마치는 이 시점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뜻밖에도 '나'인 듯하다.
(전) 남편을 구원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망쳐놓은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 자꾸 이 이혼에서 누구의 지분이 더 큰지 가늠하려는 시도들, 내가 행했던 잘못들에 대한 부끄러움, 끔찍했던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이 뒤섞여 스스로를 힘들게 하던 모든 것들이 글을 쓰며 정리되고 정돈됐다.
앞으로도 결혼과 이혼에 대해 쓰고 싶은 글들과 나누고 싶은 지혜가 많이 남았으니 아직 끝난 건 아니겠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계속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를 구할 수 있지만 혼자가 된 사람이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뿐이지 않을까? 글을 통해 나를 구하고 글을 읽는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야 말로 글을 써나가는 힘의 원천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 거란 소망을 품게 해 주신, 부족한 글임에도 읽어주시고, 후원해 주시고, 정성스레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계속해서 진심을 눌러 담은 글로 찾아뵙겠다고 약속하며 '왜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지'의 연재를 마칩니다.
25. 4. 29
온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