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크리스마스가 악몽이었는지 즐거운 성탄절이었는지 엄마아빠와 언니부부는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서울 토박이 철부지 둘째 딸이 대전으로 내려가 잘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신혼집의 모양새가 궁금했을 거다. 우린 함께 웃으며 겉으로는 매우 즐거워 보이는 2022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사건 이후 봉인해 둔 마음은 가족맞이 준비를 할 때부터 무언가 불편한 듯 덜거덕 거리고 있었다. 사실 이 봉인은 처음 이혼을 떠올린 결혼식 날 아침부터 이어져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간직해 온 복잡한 마음과 여러 결심들이 무언가 일을 내려고 하는 듯했다.
저녁 메뉴는 밀푀유나베와 육회 그리고 이베리코 돼지 목살을 구울 예정이었다. 내가 말했다.
"메인 메뉴만 내놓기엔 상이 좀 심심할 거 같은데?"
둘이 먹을 때는 요리 하나 해서 김치만 놓고 먹어도 좋았지만 가족이 오는 거니 뭔가 더 풍성하게 차리고 싶어졌다. 나는 근처 반찬가게에서 밑반찬을 사 오자고 했고, (전)남편은 내키지 않아 했지만 같이 반찬을 사러 갔다.
이것저것 둘러보며 무엇을 살지 고민하고 있으니 남편은 대충 사고 빨리 가자고 했다. 가족이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뭐 그리 서두르나 싶었지만 짜증 난 기색이 역력하니 알았다 하곤 사려고 했던 반찬들을 담고 있었다.
"어차피 상에 다 올리지도 못할 거 뭘 그렇게 고민해!?"
남편은 짜증을 내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4인 식탁이라 어차피 반찬을 얼마 못 놓을 거라 생각한 거 같다.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얼마 전 크리스마스 사건도 있었고, 상담시간에 앞으로 잘하겠다며 사과한 게 떠오르면서 순간 나도 짜증이 밀려왔다.
"오늘 같은 날에도 꼭 그렇게 짜증을 내야겠어? 앞으로 잘하겠다며?"
황급히 계산을 마치고 나가서는 밖에 있던 남편을 쏘아붙였다. 안다. 내가 방금 한 말은 가시 돋친 말이고 싸움을 거는 말이라는 걸. 하지만 이미 쌓인 남편에 대한 불신과 미움은 작은 짜증에도 불같이 타올라 평정심 따위 집어삼켜 버렸다. 집에 가는 5분도 안 되는 길에 우린 말다툼을 했고 다툼은 작았지만 봉인된 마음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했다. 남편은 요리, 난 청소. 그러다 가족이 왔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가족을 맞이했다.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다 보니 우리의 냉랭함도 어느덧 풀어졌다. 그렇게 초를 불며 2022년을 여는 카운트다운도 하고, 다음 날은 대전의 명소도 들르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집도 가며 대전 투어를 했다.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고 가족은 저녁을 먹고 서울로 출발했다.
문제는 가족이 가고 난 뒤에 터졌다.
"어? 내 결혼반지 어디 갔지?"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결혼반지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반찬을 사고 나서 코로나 검사를 하러 병원에 다녀오면서 장갑을 꼈다 벗었다 한 게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그때 떨어트린 거 같다고 했더니 그는 정신이 있는 거냐며 나를 나무랐다. 이해도 된다. 이미 한 번 잃어버려서 다시 맞춘 반지였기 때문에.
처음 반지를 잃어버렸을 때도 우린 싸웠다. 가장 속상한 건 난데 나를 비난하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게 잃어버리긴 했다. 남편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 핸드크림을 바르려고 반지를 빼 무릎에 올렸는데 다시 끼는 걸 까먹고선 그냥 내려버린 거다. 그리고 집에 와서 깨달았다.
남편은 내가 반지를 뺄 때 이미 예상했다며 정신 좀 차리라고 나무랐고, 내가 "그럼 다시 끼라고 말해주지 그랬어?"라고 하니 내가 잘못해 놓고 왜 자기 탓을 하냐며 성을 냈다. 남편을 탓하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알았으면 말이나 좀 해주지 자기도 까먹었으면서 왜 그렇게 나를 비난하는지, 그 말이 듣기 싫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아니, 이번에는 더 심했다. 두 번째니까. 결혼반지를 두 번 잃어버린 모질이가 어딨냐며 한껏 더 수위 높은 비난을 했다.
"덜거덕, 덜거덕, 쿵쿵, 쾅쾅."
봉인된 마음은 시끄럽게 요동치다 못해 이미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시 맞추면 되지 그렇게까지 얘기해야 돼? 나도 속상하니까 그만 좀 뭐라 해! 넌 내가 속상한 거보다 반지가 더 중요해?"
"니가 반지를 하찮게 여기니까 자꾸 잃어버리는 거잖아!"
"내가 언제 하찮게 여겼는데? 집에 왔더니 없는 걸 어떡해?"
"그러니까 니가 문제라는 거야. 왜? 나중에 애도 잃어버리고 잃어버렸는데 어떡하냐 하지?"
우리의 대화는 여느 때처럼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어느덧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은 도저히 나 같은 애랑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고 했다.
"달칵."
봉인돼 있던 마음은 이제야 자유로워졌다.
"그래 그러자. 나도 더 이상은 한계야."
나는 차갑게 대답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 남편은 화가 나면 꽤나 자주 이혼하자는 말을 했다. 보통은 내가 미안하다며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거나 기분이 풀리길 기다리곤 했는데 이렇게 이혼 제안을 받아들인 건 처음이었다.
다음 날, 새벽까지 싸웠던 터라 나는 12시 넘어 일어났다. 일어나니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제 한 말, 이혼하겠다는 마음엔 변함없어?"
"없어."
"그럼 어머니한테 전화해. 이혼하기로 했다고."
남편이 수도 없이 변덕을 부렸기 때문에 진심이라면 증명하라는 뜻이었다.
남편은 바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이혼하기로 했어. 그렇게 알아."
(뚝)
"됐냐?"
그 순간 나의 마음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웠다. 슬프지도, 남편이 밉지도, 이 상황이 속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 상황과 남편의 행동을 제 3자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집은 어떻게 할 건지, 재산은 어떻게 할 건지 간단히 얘기를 나누곤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로 사정을 말하니 당분간 자기 집에서 지내자고 했다. 그날부터 우린 별거를 시작했다. 그간 있던 일을 말하고 크리스마스 녹음파일을 들려주니 친구는 울먹이며 나를 꼭 안아줬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며칠 뒤 걸려온 남편의 전화. 그리고 처음 보는 남편의 태도는 나를 놀라게 했다.
이 때 끝냈어야 했다. 차갑게 돌아선 마음, 이혼할 결심. 두 가지면 충분했다. 모든 게 준비돼 있었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또 이미 엉망이 된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헛된 희망을 품고선.
남편의 문제에 대해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고 개선의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제 두 번밖에 안 한 상담이지만 남편은 상담할 때만 뉘우치고 잘하겠다 할 뿐 집으로 돌아오면 똑같았다. 쉽게 분출하는 짜증과 분노, 과격한 언행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나는 왜 다시 남편의 손을 잡기로 한 걸까?
망할 놈의 정. '정 때문에' 라는 말 외엔 달리 설명을 못하겠다. 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지금 생각하면 사랑이라기보단 연민과 인류애 그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복잡한 감정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상담을 더 받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그 희망을 붙잡고 우린 이후로 3년을 더 울고 웃었다.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