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부상담: 희망과 절망의 파도타기

by 온호류



여섯 번째 상담 후 우리는 경태라는 아이를 키우는 금슬 좋은 부부처럼 다시 또 사이좋게 지냈다. 변화된 남편의 모습을 보고 방관하는 태도로 팔짱 끼며 지켜보던 스스로를 반성했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후로는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면서 온화한 태도를 유지했다.


잠깐이었지만 마침내 꿈에 그리던 평화로운 결혼생활이 도래한듯했다.



IMG_3870.JPG



2022년 3월 6일은 결혼 3주년이었다. 작은 케이크에 초를 불고, 맛있는 걸 먹으며 어느 때보다 행복한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여태껏 2번의 결혼기념일이 있었지만 한 번은 결혼사진을 벽에 거니 마니 하는 걸로 싸우다 또 남편에게 욕을 들으며 안 좋게 끝났고, 작년에는 한창 대학원을 그만두기 직전에 힘들어할 때라 기억이 없다.


이번에는 경태도 있고 무엇보다 조금만 수틀려도 화내고 욕하는 남편이 아닌 다정한 남편이 곁에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안전함'이었다. 행복했고, 한 편으론 서글펐다. '안전한 느낌' 나는 그저 이 느낌을 원했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힘든 거였나? 의견이 좀 달라도, 실수를 해도 대화로 잘 풀어가고 괜찮다 안아줄 수 있는 그런 포근한 관계를 원했을 뿐인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상담을 하며 관계를 극복해 보기로 노력한 2022년에는 쉴 새 없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행복했다 불행했다, 즐거웠다 슬펐다, 희망적이었다 절망적으로. 온기 가득한 결혼생활을 꿈꾸다가도 서로 남이 되어 차갑게 돌아서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 짧은 시간을 두고 수도 없이 반복됐다.


그 롤러코스터의 시작점에서 더 없는 행복을 맛봤으니 이제 불행을 맛볼 차례였다.



IMG_4266.JPG



결혼기념일을 맞아 당일치기로 여수를 다녀왔다. 중간에 내비게이션을 늦게 찍는다고 남편이 성질을 내긴 했지만 좋은 날인 데다 여행을 망치기 싫어서 그냥 넘어갔다. 다행히 도착할 때쯤엔 남편의 기분이 풀려있었다. 여수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돌아왔지만 오랜만에, 그리고 결혼기념일임에도 모습을 드러낸 남편의 짜증이 금세 잊혀지진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인 수요일, 같이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정전기가 심하게 났고 통증에 민감한 편이었다. 남편은 유독 귀를 만지거나 깨무는 걸 좋아했는데 걸어가면서 자꾸 귀를 만지니 중간중간 정전기가 나서 귀가 따가웠다. 그만하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계속 장난을 쳤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또 정전기가 났다.


(따닥!)

"아야! 아 그만하라고~~!!"


내가 하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남편은 길가에 멈춰 서더니 잠시 뒤 혼자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쌩하니 가 버렸다. 뒤따라 집에 들어가니 그는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내가 짜증 내서 삐졌어? 하지 말라고 몇 번 얘기했는데 너가 계속했잖아~ 나 정전기 진짜 싫어하는 거 알면서."

"……."

"미안해 화 풀어~"

"씻을 거야 나가."

"아 왜그랭~"

"나가."


풀어주려고 하는 나를 차갑게 대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남편. 예전과도 같은 그 모습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급속히 나빠졌다. 결혼기념일 날 짜증 내던 모습이 떠오르며 더욱 그랬다.


반대 상황이었으면 남편은 짜증으로 끝낼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 말라는 걸 계속하면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노발대발 화내고 욕을 했을 거다. 순간 아파서 짜증 낸 건 맞지만 이렇게까지 정색하고 뭐라 할 건가? 하지 말라는 걸 계속한 자기 잘못도 있는데….


나는 화장실 문에 기대서서 따져 물었다.


"너가 제일 싫어하는 거 아니야? 하지 말라는 거 계속하는 거. 너가 계속하니까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한 게 그렇게 화날 일이야?"

"아 씻게 좀 나가라고!"

"아니 얘기 좀 하자고!"

"나가라고 했지?"

(솨-아-)


그는 화장실 턱에 서있는 나에게 샤워기로 물을 뿌렸다. 옷과 얼굴, 뒤편의 벽지, 뒤에 있던 선반의 종이백 등이 같이 물을 맞았다. 바닥에도 물이 흥건했다.


(정적)

"뭐 하는 거야 지금?"

"나가라고 했는데 안 나간 니 잘못이지. 나가라고 했잖아."


우리 사이는 그 후로 또 냉랭해졌다. 남편의 행동에 화도 나고, 화난다고 그런 행동을 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다음날 저녁 남편은 여느 때처럼 요리를 해서 먹으라고 했지만 둘 다 아무 말 않고 밥만 먹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내가 먼저 얘기하면서 풀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보면 나에게는 시험기간 같은 거였다.


달라지는 모습 보여주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어디까지 노력할 각오가 돼있는 건지 알 필요가 있었다. 3년간 홀로 노력하고 참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에너지는 고갈돼 있었고, 이제 그만 노력하고 싶었다. 남편은 지금부터 노력해 보겠다는 상황이니 남편의 각오가 얼마나 굳세냐에 따라 우리의 관계가 좌우될 거였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먼저 말을 걸고 그를 이해해 보려 밤새 글을 쓰며 고민하는 것을 그만하고 싶었다.


일곱 번째 상담이 있을 때까지 우린 같이 밥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IMG_4162.JPG 여수 바다


2022년 3월 13일 일요일. 일곱 번째 상담 (2시간)


*진행한 것

1. 수요일에 싸운 것에 대해 남편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고,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눔.

→ 알고 보니 이전에 '네가 기회를 달라고 한 거잖아'라며 내가 했던 얘기가 자기를 무시하는 거 같아서 마음이 계속 불편했는데, 내가 짜증 낸 걸로 터져 나온 거였음.

→ 서운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하고 싶은데 자꾸 참게 된다고 함.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았고 대화가 거의 없던 거로부터 배운 게 아닐까 생각함)

2. 남편이 화를 내게 되는 심리에 대해 분석해 봄.

3. 결혼생활에서/배우자에게 바라는 것에 대한 문답지 작성 & 답변 항목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서로에게 말해보기.


*상담 선생님의 분석

1. 나의 '어떤 말'이 남편의 무의식을 건드리면 그로 인해 난 화가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나에게 화를 내지만 그 화는 남편의 것이다.

2. 남편은 서운한 감정이 들어도 바로 얘기하는 게 안 되는 사람이다. 내가 좀 더 얘기하기 편한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한다.

3. 서운한 걸 쌓았다가 나의 작은 행동에 터트려 버리기 때문에 남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감정'을 봐주어야 함.

4. 남편은 의사소통과 표현,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것에 서투르니까 대화능력이 좋은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


*느낀 점

- 남편은 존중받고, 인정받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너무 중요한 사람인데 내가 그걸 잘 못해준 거 같아 미안하다. 남편이 이렇게라도 마음을 터놓을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좀 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남편 -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자신이 미숙해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 같아 미안하다. 아내가 배우자에게 바라는 점에 쓴 거(화 안 내고 욕만 안 했으면 좋겠다) 보고 미안했다. 빨리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IMG_3967.JPG



결국 남편이 화가 난 이유는 내가 은연중에 보여왔던 태도 때문이었다.


'네가 달라지겠다고 해서 기회를 준 거니까 어디 한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

'내가 3년 동안 고생한 거 너도 좀 느껴봐.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이런 못된 심보가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여태껏 당해왔던 것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면서 모든 마음을 한번 정리했던 터라 더욱 냉소적이었을 거다. 못난 생각이자 태도였다는 걸 인정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도 된다. 3년의 시간 동안 정도 커졌지만 미움과 원망도 그만큼 커졌으니까.




상담실은 안전하고 말하면 모두 수용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느끼는데 반해 나한테 얘기하면 반박당하는 느낌이라고 남편은 말했다. 가뜩이나 속마음을 말하는 게 서툰 사람인데 내가 조목조목 따져 물으니 더 입을 닫게 됐던 거 같다.


내가 반박하는 이유는 남편이 하는 행동이나 말이 내 입장에선 너무 어이가 없거나 얼토당토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그게 말이 돼??'라는 태도가 묻어났던 거 같다. 안 그래도 '거절과 무시' 트라우마가 있는 남편이기 때문에 더욱 대화를 거부하게 된 듯하다. 이번 상담을 통해 내 대화법에도 문제가 있겠구나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의 말이면 무엇이든 맞다고 생각하며 수용하는 자세.

나에게 필요한 건 이런 태도인듯했다. 머리론 알겠는데 이대로 행동하는 게 쉽진 않을 거 같았다.


그리고 남편의 '행동'이 아닌 '감정'을 보라는 말이 깊숙이 와닿았다. 과격한 남편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왔지 그가 '어떤 감정 때문에 그럴까?'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실 사람의 행동은 모두 '감정'에서 비롯된다. 분노해서 날뛰는 헐크한테 괴팍하다고 뭐라 그래 봤자 화만 돋울 뿐이다. 그가 헐크로 변하게 된 이유와 그가 느낀 감정을 읽어줄 때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거였다.


상담을 통해 나도 많이 배웠고, 남편도 스스로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인지할 수 있었다. 남편은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우리는 화해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 우리는 다시 한번 이혼하기로 했다.



- 다음 화에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