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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상담의 효과? 남편이 달라졌어요

by 온호류



대학원을 그만두고 대전에 내려온 뒤로 2주 이상 안 싸워본 건 처음인 듯했다.


'아, 맞아! 우리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행복할 때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빈틈없는 행복과 안정감에 결혼 초의 풋풋함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눈물의 재결합(?)이 있고 난 뒤 우리 사이는 혼인신고를 막 마치고 대학원 아파트로 이사한 직후 같았다. 둘이 함께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 설레고, 뭘 해도 좋고,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고, 무슨 일이 생겨도 신났던 그때.


첫 번째 상담이 끝나고 서로를 애틋하게 쳐다볼 때만큼이나, 아니 한 단계 더 나아가 결혼식 마지막 행진 전 손을 꼭 잡고 확신에 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처럼 우리 사랑은 그렇게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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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경태를 당장 입양하기로 했고, 다음 날 우리는 보호소로 향했다.


대학원을 그만두기 전부터 강아지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아지는 나에게 애완동물이 아닌 특별한 무언가였다. 어릴 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던 시절에 늘 강아지가 옆에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때라도 키울 조건이 된다면 바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경태를 입양하고 꿈에 그리던 '내 강아지'가 생기니 감격스러울 만큼 행복했다. 5년여 만에 첫 논문을 냈을 때보다 더 꽉 찬 행복이었다. 남편은 내가 행복하니 자기도 행복하다며 세 번의 상담을 통해 나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임을 깨달았다는 걸 은근히 어필했다.


강아지를 키우냐 마냐, 경태를 입양하냐 마냐로도 참 많이 다퉜었다. 동물을 좋아하지도 키우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남편이었지만 이번 상담을 계기로, 오직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양을 허락해 준 거다.


IMG_1516.JPG 처음으로 경태와 같이 상담을 가던 날


바로 다음 주에 네 번째 상담이 있었다. 이날은 셋째 날 검사지를 받아와 사진으로 제출했던 성격/기질 검사에 대한 결과를 들었다.


"불안이 이렇게 낮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나는 상위 1% 불안이 적은 사람이었고, 남편은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또한 나는 자존감 검사에서 만점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고 남편은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에 남편의 말을 수용하지 않고 반박하는 나의 화법과 남편 속에 쌓인 화 그리고 서툰 분노 조절 능력의 콜라보가 메인으로 작용했겠지만, 그 기반에는 상극이라고 볼 수 있는 둘의 성향도 한몫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나와 달리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남편.

돈보단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즐겁게 사는 게 더 중요한 나와 달리 돈이 가장 중요한 남편.

원리원칙보단 융통성이 중요한 나와 달리 원리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불편감을 느끼는 남편.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계획이 틀어질 때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는 남편.


맞춰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결이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춰 가야 하는 게 너무 많은 사람 vs 이미 너무 잘 맞는 사람의 충돌 빈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성향이 다른 사람일수록 잘만 화합한다면 서로의 부족함을 완벽 보완해 주는 드림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만큼 각자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팀 내 갈등과 분열이 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나의 행동이 남편에게 부정적 감정을 안겨줬기 때문에 내가 그를 화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편은 날 이해하지 못했고 주로 비난을 했다. 나 또한 내겐 별일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내는 남편이 답답하기도, 서운하기도, 때론 부끄럽기도 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충만했지만 첨예하게 다른 성격은 바뀌는 게 아니었기에 한 달쯤 지났을 때부터 슬슬 남편의 짜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영원히 훈훈할 것만 같던 우리 사이에 또다시 찬 바람이 들기 시작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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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상담을 가는 길이었다. 급히 지하철을 타러 가는 중 경태가 무거우니 개찰구 앞까지 걸어가려고 에스컬레이터 옆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남편이 가방에 넣어서 가자고 했는데 지하철 시간이 촉박했던 터라 그냥 가자며 계속 내려갔다.


그때 마주 올라오던 분 바지에 경태 코가 살짝 스쳤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분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하고 넘어갔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은 "내가 넣으라고 했잖아!"라며 화를 냈다.


내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이렇게 화를 낸다. 나도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건데 자기 의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짜증부터 내는 게 항상 불만이었다. 앞으론 밖에서부터 가방에 넣어서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 되지, 꼭 이렇게 화를 내며 사람 기분을 잡치게 만들어야 하나?


기분이 상한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경태를 가방에 넣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남편은 따라오지 않았고 우린 상담실에 따로 도착했다.


이상한 기류를 느낀 선생님이 왜 그러냐 물어보셔서 싸운 경위를 얘기했고, 기분을 풀어주려 여러 좋은 말을 해주셨지만 둘 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올 때도 남편이 먼저 가버려서 집에 따로 와야 했다.


"그냥 1월에 끝냈어야 하나..? 잘하겠다는 건 한 달짜리였나?"


이젠 남편의 짜증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더 큰 짜증이 솟구쳤다. 더 이상 받아줄 수가 없었다. 나에겐 너무도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내고 그로 인해 내 기분까지 상해야 하는 게 싫었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게 싫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거지만 남편이 작은 일에 화를 내는 건 속에 쌓인 큰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바로바로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다고 했다. 그게 쌓였다가 사소한 것에서 터지는 거라고.


하지만 알아도 별수가 없었다. 말을 안 하니 나는 남편 안에 뭐가 쌓였는지 알 길이 없고 자신의 의견과 내 의견이 다를 때마다 성질을 낸다고 생각되니 숨이 막히고 불쾌했다.


서먹한 사이로 잠이 든 다음날 경태와 관련해서 또 의견 충돌이 있었다. 예전과 같아진 남편의 태도에 실망한 나는 어제 했던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또 그렇게 화내기 시작이야? 불편한 거 있으면 분명하게 얘기를 해주지! 난 너 마음을 모르니까 내 생각대로 했을 뿐인데 그게 왜 그렇게 비난받아야 하는 건데?"


둘의 생각이 다를 때 대화로 합의점을 찾거나 더 간절히 원하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에 감정이 상했고, 내가 잘못했다는 듯 화를 냈다.


"잘하겠다며, 노력하겠다며, 화내지 않고 얘기하겠다며! 한 달짜리였던 거야? 한 달 지나니까 바로 예전처럼 돌아오는 거야? 나한테 보답할 기회를 달라면서 이게 보답하는 사람의 태도야?"


감출 수 없는 실망감과 함께 모진 말을 쏟아내곤 나는 경태와 산책을 나갔다.



집에 오니 남편이 닭백숙을 해놓았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먹으라고 하는 것이 남편의 유일한 화해법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이 처음으로 먼저 말도 건넸다.


"먹기 전에 할 말이 있어."

"뭔데?"

"헤어질 거 아니면 빨리 풀자. 내가 모호하게 얘기하고 짜증 낸 거 미안해. 앞으로는 분명하게 얘기하려고 노력할게. 내가 그러면 너도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


처음이었던 거 같다. 적극적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먼저 사과까지 한 건. 한 달 동안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의 변화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거나 나의 소중함을 깨닫고 잘해주려 하는구나 생각되는 정도였다.


오늘에서야 느꼈다.

'남편이 진짜 달라졌구나!!'


갑자기 미안함이 몰려왔다. 남편은 지금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걸 텐데 나는 극적인 변화를 바라기만 하고 있던 건 아닌가. 어떻게 사람이 한 번에 변할 수 있겠나 조금씩 노력하며 바뀌어 가는 거지. 그리고 나도 같이 노력해야지.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고, 잘못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듣고. 사실 이거면 되는데, 어려운 게 아닌데, 우린 왜 그렇게 싸우고 또 싸우며 서로에 대한 미움을 쌓았던 걸까?


여섯 번째 상담을 가서 나는 선생님께 자랑했다. 남편이 이렇게 노력하며 달라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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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6일 토요일. 여섯 번째 상담 (2시간)


*진행한 것

1. 각자 가족 간의 사이가 어땠는지 얘기함. (싸울 때 어땠는지, 부모님의 가정사 등등)

2. 어릴 때의 기억에 대해 얘기함.

-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긴 했지만 나와 싸운 적은 없음. 언니랑은 많이 싸움. 주로 언니가 화내고 나는 차분하게 말대꾸하는 편. 대체적으로 화목하고 사랑받은 기억.

남편 - 초등학교 5학년 이전의 기억이 없음. 대학생 때까지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음. 어렸을 적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기억이 없음. (그래서 말하기를 꺼려하고 거절을 두려워하는 듯함)


*상담 선생님의 분석

1. 남편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쁘게만 기억하려 한다. 힘들었던 기억이라 무의식에서 꺼내려하지 않는 거 일수도.

2.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다. 좋았던 것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 그런 것을 기억해 보는 게 필요할 듯.


*느낀 점

- 처음으로 상담실 밖에서 우리끼리 문제를 해결했고, 남편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매우 기쁘고 고무적이다.

남편 - 아내가 상담을 와서 얘기해야만 자신의 얘기를 들어준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거 같다. 상담실 밖에서도 도와달라고 분명하게 얘기하면 들어준다는 것을 느꼈다.




남편의 노력으로 우리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한 뒤로 우린 다시 사랑이 넘쳤다. 이렇게 상담받으며 노력하면 앞으로 싸우지 않고 대화로 잘 풀어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본 거겠지?


하지만 희망과 절망은 늘 번갈아 오는 듯하다.


일곱 번째 상담이 돌아오는 주에 또 일이 터졌다. 이번엔 3주 만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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