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강연이나 책 등에서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표현을 종종한다. 나는 그 함의가 무얼까. 머리로는 알지만, 느껴보지 않았기에 찜찜한 채 무의식으로 가라앉혔다. 풍성한 삶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풍성한 삶이라는 지식을 몰랐기에 경험을 해놓고서도 경험한 줄 모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지식에서 지혜로 나아가려면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론을 외면하면 그저 공기 중으로 흩어질 뿐이다.
인간에게는 순간의 의미가 기쁨이다.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어떤 꽃 앞에서 그것의 이름을 알고, 꽃말을 알고, 전해지는 이야기를 안다면, 쉽사리 지나쳐버릴 수 있을까. 길에서 아는 사람을 보면 인사하듯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겨우 형태만 유지한 오래된 집 앞의 화단을 지나려다, 붉은 꽃 앞에 걸음을 멈췄다. 이름을 모르지만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엄마는 감탄하며 생전에 할머니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꽃이라고 했다. 어릴 적 우리 집 화단에 많이 심었다고 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무의식이 그 꽃 앞에 멈춰 서게 한 걸까.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접시꽃이었다.
과거 시골에는 유난히 접시꽃이 많았다고 한다. 신라시대부터 최치원이 접시꽃을 소재로 시를 쓴 것이 전해오고 있다.
촉규화(접시꽃) - 최치원
적막하고 황량한 밭 귀퉁이
탐스런 꽃송이에 약한 가지 휘었네
장맛비 그쳐 향기 흩날리고
훈훈한 바람에 그림자 흔들리네
수레 탄 사람 그 누가 보아줄까
그저 벌 나비만 와서 엿볼 뿐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소외당하는 한을 삼켜 견디네
당나라 타국에서 최치원은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접시꽃을 보며 생각했다. 신라에 돌아와서도 6두품 출신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아는 사람을 기용하고, 출신과 배경에 대한 편견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저 지나쳤던 거리의 꽃에서 할머니와 최치원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