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라면 어머니보다도 더 한없는 사랑을 줄 것 같고 할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더 한없는 지혜를 나누어줄 것만 같은 이 그리움은 환상일까?
가끔 멋진 할아버지의 지혜가 담긴 책을 만나는데 조셉 캠벨의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이 그런 책이다.
캠벨은 위트 있게 솔직하다. 신화 연대기의 아버지인 <황금가지>의 저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사실만 나열하느라 영혼이 길을 잃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경애하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만에 대해서는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캠벨은 사실만을 정확히 설명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시와 문학을 빌려 신화 속의 사랑을 설명하는데 나무 밑 벤치에서 그의 열정적인 글을 읽다가 섬광이 비추듯이 영혼을 통과하는 문장을 만날 때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황홀한 기분이 들곤 한다.
황성 공원 벤치에서
책에서 심장을 관통하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한 문장만이 책을 덮고도 그 책이 나에게 의미하는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토마스만은 "....... 은 서로를 갈망하는 영혼과 자연의 고귀한 만남"이라고 했다.
갑자기 번개가 친 것 같았고 나는 페이지를 넘겨 다시 찾아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말한 걸까.
인간이었다.
나는 캠벨이 찬양해 마지않는 '피네간의 경야'(제임스 조이스)나 토마스만의 작품을 읽지 않고도 그가 느낀 경이로움을 십분 이해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토마스만이 이 문장을 적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 그 합일의 순간에 내가 있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순간은 이런 순간일 것이다. 공통점이 있다거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보다는 어떤 우연한 이끌림 너머 우리가 하나의 느낌으로 존재하는 순간 말이다.
인간은 서로를 갈망하는 영혼과 자연의 고귀한 만남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면 이것이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