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화원 Nov 08. 2021

있는 그대로의 세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세이 03 -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죽음

By Rogelio de Egusquiza (Santander, Spain, 1845 - Madrid, 1915) Public Domain, URL 


서양에서 열정으로서의 사랑을 가장 인상적으로 그린 것은 분명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일 것이다. 사랑의 기쁨이 주는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연인들이 느끼는 기쁨이라는 역설을 그리는 이 이야기에서 사랑의 아픔은 고결한 영혼들에게 삶의 진미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을 다룬 여러 위대한 시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Gottfried von Strassburg(바그너의 오페라에 영감을 준 것이 그의 작품이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p.223>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고결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 "단 (내가 듣기로)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로지 기쁨만을 누리려 하는 평범한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신이시여, 그들이 기쁨 속에서 살 수 있기를!) 내 이야기는 그런 이들의 세상이나 삶의 방식과는 무관하다. 그들과 내 삶은 접점이 없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그와는 다른 세상, 가슴속에 기쁨의 고뇌와 슬픔의 달콤함, 환희와 고통스러운 갈망, 소중한 삶과 슬픈 죽음, 소중한 죽음과 슬픈 삶을 함께 담고 있는 세상이다. 나는 이 같은 세상에서 내 세계를 갖고 그와 더불어 저주든 구원이든 받으련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삶의 자세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현대사회의 긍정주의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자본주의나 자유주의라는 허구는 이 세계를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그 허구를 붙들고자 애썼던 적도 있었으나 결과는 허탈할 뿐이었다.

 

고트프리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다.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이 한데 어우러져 승화되는 곳, 그곳에는 선악도, 옳고 그름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잘랄루딘 루미*



(경주) 신라17대 왕 내물왕릉 - 신라 시대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잠들어 있을 것만 같다.


긍정과 희망과 용기를 강조하는 것은 반드시 그 대립구도인 부정과 절망과 좌절을 수반한다. 그것을 조화롭게 하는 힘을 나는 찾고 있었다. 파랑새와 같은 영원한 기쁨을 쫓아다니다 지쳐버린 마음은 슬픔의 밑바닥에서 이제 어떤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중심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 이 신화적 세계의 정설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신화는 나의 죽음을 이끄는 안내자이자 새로운 나로 태어나게 하는 창조적 힘을 표현한다.


신화나 자연에 대한 수필을 읽으며 신과 인간의 관계, 자연 속의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사실적이며 역사적인 해석에 기반할 수도 있고 상징과 은유를 폭넓게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사실적 접근 너머 나의 신화에 대한 상징적 은유를 발견할 수 있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존 버로스 John Burroughs(1837-1921)의 자연사 수필집 <자연의 방식>은  상징과 자연에 대한 사실적 해석과 서술 방식에서 비슷하고 캠벨의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은 소로우의 자아성찰적인 <월든>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들의 서술에는 고뇌와 환희, 절망과 희망, 고독의 슬픔과 침묵의 기쁨이 함께 있다. 자연사보다 신화에, 소로우보다 캠벨에 빠져드는 까닭은 여기에 더해 초월과 경이로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적으로 꾸밈없이 자연의 생태를 담담히 서술했다는 존 버로스의 책을 몇 장 읽다 못해 덮고 말았다. 버로스는 생전에 동물과 자연을 의인화하고 상상을 통해 말하는 작가들을 '숲의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비판했다는데 그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한마디가 더 와닿는다.



"환상 없이는 현실도 없다"*



환상과 진리, 이상과 현실은 반복되는 영원한 테마이며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경주에서 조용히 사색을 시간을 보내면서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만나는 하루하루는 말없이 충만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이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