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당하고 싶으면서 당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분석해 AI
오늘 비가 갑자기 오면서 사무실 외벽을(누가 건축했는지, 외벽이 글쎄 철로 되어있다.) 뚱땅뚱땅 치는 창간소음(!)에 일을 전혀 못하겠어서 노래를 틀었다.
멜론에서 노래를 재생하려는데, 검색어 1위가 "비"였다. 비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서 다들 검색했겠구나, 하며 어디 추천받아볼까 하는데 요새 아이돌들 노래가 나오면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비오는 날 듣고 싶은 노래는 아이돌 노래가 아니라서 결국 검색어 추천보다는 다시 내 취향 추천 듣기로 바꿔본다. 그러자 귀신같이 내 취향에 맞게끔 노래를 설정해서 들려준다.
Ai는 정말 귀신같다. 이 놈의 빅데이터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예전에 아이가 선물받은 옷이 너무 귀여워서 SNS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SNS의 광고 글에 그 옷이 뜬다. 덕분에 아이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찾아 고심하며 선물해준 사람의 예쁜 마음과 동시에 강제로 그 선물의 가격까지 덩달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질문할 내용에 대해서 검색어를 제대로 넣고, 목적어, 서술어를 정확히 안 다음 질문했을 때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 chatGPT까지 나왔다. 아주 획기적인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세상에, 결국은 인간이 알음알음 모으던 빅데이터의 군집이 이런 수준까지 진화했다. 10년 전 사람들은 빅데이터에 대해서 몰랐고, 지금 빅데이터는 어느 산업군에서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데이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과학 기술적인 AI가 진화할수록 오히려 인간만이 활용할 수 있는 창의력 등을 활용할 창작 기반의 직업만 살아남을 거라고 예측했던 과거와 달리, 제일 먼저 사라질 직업이 예술쪽이 되었다.
디즈니를 000화풍으로 그려줘
000작가의 기법으로 1930년대를 묘사해줘
과거에는 알 권리가 더 중시되었을 거다. 정보를 가지는 사람, 그리고 정보를 조종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알아야만 했으니까. 기실 지금도 그렇다. chatGPT를 빠르게 공부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미래에 좀 더 살아남기 쉬울 것이다. 살아남는 법, 생존할 것.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있는 필수 기법이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직은, 모를 권리도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나.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때때로 홍상수 감독이 김민희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저 멀리 산드라 오가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지, 그리고 이번 봄에 아마존의 산 면적이 얼마나 없어졌는지 알게 된다.
앎에 있어서 주관과 의지 없는 학습만큼 무서운 게 어디있을까. 차곡차곡 내 뇌리 속에 남게 된 저 정보들은 뜬금없이 밥을 먹다가, 목욕을 하다가, 아주 드물게 공부를 하다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나는 더이상 내가 관심있는 것들보다 내가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사고하고, 또 인식한다.
모르고 싶다. 몰라도 된다고 내가 결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로 모르고 싶다. 궁금하지도 않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그레이 아나토미를 좋아했고, 쇼핑몰 아마존에 대해서 검색했다는 것들 때문에 강제로 나는 홍상수와 김민희의 현 관계, 산드라 오의 현재, 그리고 남미 아마존의 극심한 자연파괴에 대해서 생각하고, 사고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중요하고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지만, 다른 것들은 쓸모없다 못해 그대로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과연 이 TMI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궁금해도 참아야 하느니라 하며 허벅지를 찔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끊임없이 끊임없이 핸드폰에 중독될 정도로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나가야 하는 것일까.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 노래를 어릴 때는 깊이 공감하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 무릎을 굽혔다 펼때, 허리에서 뚜둑 소리가 날 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한다.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이렇게 많은 광고와 정보 속에 나는 눈이 아파왔고, 안구건조증을 검색한 나에게 알고리즘은 새로 나온 눈안마기를 광고로 띄워주었으며, 나는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그걸 사달라고 졸랐다. 자연스럽게 알고리즘의 세상에서 요지경처럼 살고 있다.
이렇게 나에게 자꾸만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나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또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내가 키울 아이는 또 얼마나 정답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적어도 아이나 내가 받은 선물을 광고로 띄우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냔 말이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데이터 이진법 녀석아...
사람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경제학적으로 환산하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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