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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n 20. 2023

덜렁이의 방식

삶이란 무엇일까... 삶은.... 삶은 계란이다... 

아침부터 출장으로 늦게 출근해도 됐을 기회를 포기하고 사무실로 정시 출근했다. 어제 산 다이슨 공기청정기의 박스 안에 리모컨이 들어있는 걸 모르고 버린 탓이다. 아니, 써봤어야 말이지. 다이슨 헤어드라이기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할때도 나는 꿋꿋하게 비달사순, JMW 드라이기를 애용했던 레이트어답터란 말이다. 그러다보니 다이슨 공기청정기에 리모콘이 반드시 필요한지는...알반가?

알바긴 하지... 내 일이니까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크리링처럼 이 무슨 뜬금없는 동그라미 배치란 말이냐

덜렁이는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매번 실수하지만, 실수를 해결하는 데에는 덜렁이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다. 일단 내가 실수한 게 맞는지 주변 완벽이 및 덜렁이들에게 의견을 모아 객관적인 실수 지표를 만든다. 


야야, 다이슨 공기청정기에 리모컨 있대?? 물어보자 저런 사진을 끌어오는 완벽이 및 어?? 뭐라고??? 야 우리집도 버렸는데 일났네 하는 덜렁이들이 있다. 

오케이. 이번 실수의 정도는 10점 만점에 6점. 


완벽이들이 어떻게든 해결해주고자 비둘기처럼 이모저모 방법을 가져다주는 사이, 덜렁이들은 서로의 바보짓을 공유하며 마음을 안정시킨다. 야, 나는 어쩌냐. 있는 줄도 몰랐어. 버린지도 오래됐는데, 어쩌면 좋지, 너만 그런거 아냐 하는 안도감을 주는 말과 그거 만약에 잃어버렸으면 대우 위니아에서 판대. 그걸로 호환시켜.라는 해결책을 주는 말들이 오간다.




이번 경우는 일단 내가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해결책은 바로 사무실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담당하는 미화 여사님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1층의 안내데스크에서 시설관리팀이 어딨는지 문의하고 시설관리팀에서 내 사무실 층을 담당하시는 미화 여사님이 누구신지 여쭤본 후 미화 담당 반장님의 연락처를 넘겨받았다.

     

안타깝게도 미화반장님은 내 사정을 듣고 다소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지만, 괜찮으니 제가 뒤지게 해달라 라고 요청드리자 담당 미화여사님을 연결시켜주셨다. 여사님과 함께 분리수거장으로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도 해본다. 억양을 듣자하니 숨길 수 없이 같은 지역인 거 같아 은근히 오메! 같은 추임새도 넣어본다.


천만다행으로 여사님이 박스를 버릴 때 기억을 하고 계셔서 이 쯤에 버렸는데~ 하고 상자 더미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손짓하자 바로 뿅! 나왔다. 사실 그 많은 상자 더미에서 찾아내신 게 너무 신기했지만, 나는 사실 미화 여사님들의 비상한 기억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되겠지, 하고 믿고 있었다.

     

꺄! 너무 기뻐 여사님을 한번 안아드리고 커피라도 사드리겠다 했지만 오전에 이미 드셨다며 한사코 사양하고 가셨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명찰을 몰래 곁눈질해 보았다가 약소하지만 박스 음료수를 사서 크게 000여사님께 라며 편지를 써놓고 여사님이 자주 보실 만한 곳에 놔두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정해진 출장을 떠났다. 다행히 얼마 늦지도 않아 걱정없었다.

다시봐도 감쪽같다. 상자 뒤에 리모컨있어요! 상자 뒤에 리모컨 있다구!!

      

예전에 유명한 자사고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미화여사님들은 정말 기억력이 비상하시다는 거다. 그 분들은 대단한 살림꾼에 엄청난 책임감, 그리고 완전한 측은지심을 가지고 계셔서 도와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해주시고 만다. 전전직장에서 배운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인화적인 것들을 기어이 학습하고 말았다.

      

해결하고 와서 없으면 하나 구매하자던 상사의 손에 리모컨을 쥐어드렸다. 어떻게 찾았냐는 말에 미화여사님을 찾아갔다고 했더니 그런 생각은 어떻게 했냐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는 리모컨을 받아들고 금세 잊었다. 하지만 난 절대 잊지 않지. 덜렁이는 이런걸 잊지 않는다. 그 뒤로도 미화여사님과 층에서 마주칠 때마다 커피 한잔씩 하며 그 때의 추억을 나누고, 때로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왜 이렇게 안보여? 왜 이렇게 바뻐?

-여사님이 더 바쁘시네. 요새 통 못 뵀어요~!


삶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다. 삶은... 생즉고... 고생 그 자체이기도 하고, 사실 별 의미 없이 태어난 김에 사는 거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살다 가겠지 싶다가도, 또 가끔은 굉장히 아름다운, 소소하고 찬란한 순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결국은 살아내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은 계란이라고 중의적 의미로 눙쳐본다. 

Boiled EGG. 삶은 계란 후후후후.

좀더 부연하자면 둥글둥글 돌아가는 계란 같은 인생이기도 하고 어쨌건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콜럼버스처럼 덜익힌 계란을 깨서 식탁에 세울 필요는 없다. 가끔은 떼굴떼굴 굴러가게 두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머리에 깨서 먹어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일용할만한 양식이 되어주기도 해야한다. 


누구나 완벽할 필요는 없다. 

완벽이는 완벽이의 방식이, 덜렁이는 덜렁이의 방식이 있다. 
676명의 삶은계란처럼 사는 덜렁이들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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