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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l 20. 2023

엄마와 여행갈 때 십계명

출발부터 함께 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엄마의 치료가 이번 주로 마지막이다. 내려가실 수도 있고 좀 더 병원에 계실 수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엄마가 이렇게 근처에 살았던 것도 오랜만이었다. 엄마 뭐해? 하면 근처 동네 공원을 돌고 있다고 해서 매번 만나러 갈 수는 없었지만 종종 만나러 가기도 했었다. 


엄마가 좀 더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심심해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 가족끼리 미리 예약했던 여름휴가를 같이 가자고 말을 꺼냈다. 엄마가 더 아랫지방에 계실 때는 바다를 보러 갈 겸, 엄마를 보러 갈 겸, 여름휴가를 종종 같이 보냈으니, 어색하진 않겠지 싶어 차를 타고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직장동료에게 오늘 넌지시 말해보니, 괜찮겠냐고 한다. 

바로 극성수기 휴가철인데, 강릉까지 막혀서 어떻게 가겠냐고.


그래서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와 매번 기차여행을 갔었지만, 옆사람이 탈 것을 생각해 좌석을 돌리지 못했었는데 이번엔 4인이니 가능할 것이다. 


엄마는 바리바리 또 간식을 싸와서 계속 우리와 아이에게 먹일 것이다. 나는 됐어됐어 하면서도 손에 들고 있을 것이고, 남편은 장모님 이거 맛있는데요 하면서 넉살좋게 얘기할 거고, 아이는 수줍게 난 이거 그만 먹고 싶어, 하겠지. 그럼 또 그것대로 재밌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기 위해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도 기차를 탔건만, 엄마랑 함께 기차에 몸을 싣고 가보는 것은 처음이다. 


오랜만에 설렌다. 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이자, 총무이자, 간사이자, 회장이다. 기꺼이 쓴 감투로 쿨하게 왕복 기차표를 결제했다.



엄마가 뭐 필요할까? 하고 질문했다. 글쎄... 신발이랑 옷? 정도를 얘기했더니 엄마 나름대로 슬그머니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든 십계명.


인터넷 글 중에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을 갈 때는 부모님께 여행 전 숙지사항을 꼭 안내해드려야 한다고 한다.

1. 아직 멀었나 금지
2. 음식이 달다 금지
3. 음식이 짜다 금지
4. 겨우 이거 보러 왔나 금지
5. 조식이 이게 다냐 금지
6. 이 돈이면 집에서 해먹는 게 낫겠다 금지
7. 돈 아깝다 금지
8. 이 돈이면 한국 돈으로 얼마냐 금지
9. 물이 제일 맛있다 금지
10. 더워서 숨을 못 쉬겠다 금지

해외여행이 아니고 국내여행이지만, 왠지 이 10계명 중 틀림없이 몇 개가 엄마 입에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미리 공유해드려야 하나 고민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엄마에게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1. 왜 이렇게 늦어 금지
2. 왜 이렇게 빨라 금지
3. 엄마는 맨날 왜 그래 금지
4. 아따 엄마! 금지
5. 내가 할 게 그냥 내비둬!!! 금지
6. 엄마 말 넘겨짚고 상처받기 금지
7. 과욕 금지
8. 엄마 여기서 사진 찍자 금지
9. 엄마는 그것도 몰라 금지
10. 엄마 너무해 금지

쓰고 나니 과연 누가누가 더 많이 금지어를 내뱉을까 배틀인데...? 가는 길 내내 기차 안에서 할 일이 없다면, 가는 동안 금지 앞 칸을 비워두고 누가누가 더 많이 금지어를 내뱉느냐에 따라 다음날 식사 내기를 해도 괜찮겠다. 


과연, 이번여행에서 나는 엄마와 적당히 싸우고 적당히 화해하고 적당히 사랑하며 순탄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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