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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ug 03. 2023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려요...?

나는 너무 사랑하면 미워지던데...

최근에 구교환이란 배우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의 사생활에 좀 더 깊숙이 침입하게 되면서 그가 이옥섭이라는 감독과 아주 오랜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함께 2X9 라는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는데, 처음에는 구교환에게 빠져서 보다가 어느새 이옥섭에게 빠져들게 된다는 후기가 많았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싶었지만 채널을 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이효리가 진행하는 토크쇼 <서울체크인> 에 구교환과 이옥섭 모두가 출연한 짤(그마저도 전부 보지 못하고 편집된 짤로 보았다)을 보게 되었다. 미운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이옥섭감독과 구교환배우에게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자, 이옥섭 감독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일화를 얘기해주었다. 여행가던 버스 안에서 매니큐어를 바르던 민폐 동행이 있었는데, 자기가 그 사람을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보려고 했더니 한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밀폐된 버스 안에서 진한 화학약품냄새를 풍기는 동행을 어떻게 사랑스러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도 놀라웠지만 그러고 나서 고백하길, 자기는 너무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사랑해버린다고 했다.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하나는 3년쯤 되어가는 치유글쓰기고, 하나는 이 브런치를 개설하게 해준 바라다드림의 글쓰기모임이다. 치유글쓰기는 100일 간 리더인 민정쌤이 날마다 리드문을 올려주면, 리드문을 보고 사유를 깊게 이어가든지 아니면 일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적어보는 자유글쓰기다. 덕분에 쓰는 행위가 굉장히 자연스러워졌다.(바라다드림의 글쓰기모임에 대해서도 나중에 쓸 수 있기를!)


이번 치유글쓰기 모임의 리드문 중에 가장 마음에 박혔던 리드문은 바로 박완서 작가의 글이었다. 

다시 적어보자면 이렇다.

"언젠가는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은 있었던 것 같아요.(중략) 가령 너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쳐요.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해준 것도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그려보겠다 하는 복수심 같은 거죠."   
  

나는 고백건대 제일 좋아하지 않는 한국의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박완서 작가를 꼽을 수 있었다. 


그의 글 속의 등장인물이 너무도 초라해질 때,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때, 그럼에도 그것을 담담하고 아주 정확하고 명징하게도 서술해낼 때. 나는 박완서 작가가 너무도 징그러웠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기어이 모든 이상을 부숴뜨리고 현실을 선택해버리고 나서도 그냥저냥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게 살아가면서 현실에 진절머리낼 때. 그 지점을 서술해내는 그 잔혹함과 진솔함, 산다는 행위를 살아내야만 하는 것으로 바꾸고 마는 그 강하디 강한, 또 처절한 생명력. 


그게 너무 지긋지긋했다. 


오히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다 읽어냈다. 일부러 찾아 읽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내가 그에 부연하는 설명을 굳이 붙이기도 전에 이미 나열되어 있는 그의 글. 일상소설의 대가. 그녀는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린다는 이옥섭 감독의 말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오히려 너무 다정해서,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해서 미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끝없는 낭만>부터 <엄마의 말뚝>,<나목>, <친절한 복희씨> 그리고 그의 수필집까지. 왜 이렇게 다작을 해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너무도 무언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서 아팠기에 글을 써야만 살 수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 지독했다. 왜 이렇게 그녀를 싫어한다고 얘기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녀의 글만 찾아 읽을까. 그만큼 내가 살고자 하는 방식,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위로해 준 작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래, 그러니까 너도 살아. 너도. 너도 그렇게라도 살아. 그렇게라도 견뎌라, 버텨라.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사랑할지, 복수심에 활활 불탈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사실 그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기도 하다. 이옥섭 감독처럼 사랑해버리고 싶지만, 나는 아마 박완서 작가처럼 투덜댈 거 같다. 박완서 작가의 투덜거림이나마 닮고 싶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야야 나 이런 일 있었다 하고 징징거리고 말겠지.


기실 둘 중의 하나의 방식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명확하게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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