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Aug 02. 2023

복 받으실 거예요

호구/흑우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어느 순간부터 흑우, 흑우라는 명칭들이 자주 보여서 저게 뭘까 하고 검색해봤다. 역시 나무위키 만만세, 모르는 게 없다. 이 chat gpt의 선구자 같으니. 흑우의 어원은 호구에서 비롯된 인터넷 은어였다.

해학과 파자놀이의 민족 같으니라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것저것 자꾸 모아서 퍼다준다. 이미 친한 친구에게도 내가 더 많이 줘야 속이 더 낫다. 누군가에게 얻어먹기보다 내가 사줘버리는 것이 더 속 편하다. 이런 특성은 착하다고들 많이 오해하지만 글쎄다. 착해서라기보다 성격이 급한데다가 누군가가 좀 더 나를 좋아해줬으면, 하는 오히려 다소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진짜 착한 마음이었다면 서운함이 없어야 할텐데, 약간은 또 서운함과 생색내고픈 마음이 은근히 돋아난다. 


내가 좋아서 한거지, 


하고 다독이려 해본다. 그래도 마음이 잘 다듬어지지 않는다. 해달라고 해서 해준 것도 아닌데 그만큼 돌아오지 않는 후의에는 한없이 강퍅한 마음을 가져버린다. 



그러면서 몇몇의 어긋난 관계들이 있다. 아예 처음부터 첫인상이 별로여서 이어지지 않은 관계보다, 그 관계가 더 마음쓰이고 아프다. 받으면 너무 받은 것 같다는 마음에 보답을 못해 미안하니 어긋났고, 주면 순식간에 더 달라고 하는 관계는 섭섭해서 어긋났다. 그러다보니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서, 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겨우 거리두기를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러 관계들 속에서 상처받는 나를 보면서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마음 아파한다. 그러면서 그러지마, 하고 내 행동을 제약해주거나 선을 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게 잘 안 된다. 그게 되면 내가 그 사람이지 나일 수는 없지. 안타깝게도 먼저 다가가서 혼자 상처받고 돌이켜보니 그때 그러지말걸, 하고 깨닫는 경우가 많다. 


나도 주는 내가 싫은 게 아니다. 주고 나서 그걸 얼마정도인지, 이후에 이걸 주면 돌아올까 하며 이리저리 재고 있는 내 자신의 지난스러움이 싫다. 그러면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내가 안됐다. 


물론 그러면서 또 좋은 관계들이 얻어지기도 한다. 서로 주고받고 주고받고 칼자르듯 무자르듯 하지 않고 슬렁슬렁 대충 눈대중으로 비커에 잠긴 물 재듯 눈치껏 채워주는 관계들. 그런 관계들이 지속된다면 또 마음의 평안함이 온다. 어차피 지속되는 인간관계가 예의와 애정을 주고받고 하는 것이라면, 물품도 물건도 재화도 왔다갔다 하는 게 당연하니까. 모두가 이런 주고받는 인간관계를 당연하게 생각하겠거니, 하면 또 씁쓸하기보다 편해진다. 



     


아이가 하나라 아이로 어릴 적 못다한 인형놀이를 한다. 오늘 입힌 옷을 내일 입히는 건 싫고, 오늘 신긴 신발은 내일은 안 신긴다.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유복하게 입히는 것 같은데, 실상은 일주일 주기로 돌긴 돈다. 그래도 이벤트도 좋아해서 이벤트 관련 특이한 의상들도 꽤나 있다. 또 아이가 발이 어찌나 커지는 지 신발은 사도사도 자꾸 작아진다. 덕택에 내 아이의 옷을 넘겨받아 자기 아이에게 입히는 친구의 입이 벌어진다. 

    

항상 고마움을 표하던 친구에게까지 은근히 재려고 하고 있던 내게 친구가

"우리 시어머니가 넌 진짜 복받을 거래." 

한다. 복받는다니,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덕담에 어안이 벙벙하다. 친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은 그동안 시간, 돈, 선물 등등 얼마나 다양했는가. 그러나 오로지 가산적이고 속물적인 가치들로만 재고 맞바꾸려 하던 내게 복이라니. 



복. 

그 얼마나 불가산적이며 긍정적이고 가치있는 말인지.     



그래, 내가 남들에게 해주는 만큼, 또 기대하는 만큼 받지는 못해도 나는 복받을 거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원하는 일 다 술술 잘 풀리도록. 그 모든 기원의 시작이 복 아니던가. 그런 복을 담을 만큼 마음의 그릇 좀 키워야겠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돌려받고 싶은 마음 그릇으로는 둘도 셋도 당연히 열도 받을 수 없을 거다. 


언젠가 돌아오겠지, 안 그럼 내 아이가 받겠지 하는 심정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더 챙겨보아야겠다. 이번만 해도 말만 들었지 모르는 분께 덕담을 받지 않았나. 마음 그릇에 잘 담아두었다가, 또 불에 팔팔 끓어 그릇이 쪼그라들 때 한 번 더 떠올려야겠다. 


복 받아버려야지. 내가 복 다 받을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서이초 교사 사건에 대한 긴 사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