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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ug 10. 2023

회자정리 거자필반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사람을 만난 적 있나요

지나치리만큼 심했던 장고 끝에, 최근 친구라는 범주에 넣을 뻔 했던 이를 그냥 빼기로 결심했다. 한 번 다가온 사람은 잘 쳐내지 않는 고질병 같은 나의 친애에 빗금이 갔다.    

외로움을 정립해나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일생이라면, 아직 나는 멀었군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믿는다. 그것 덕분에 더욱 인간관계에 매달리고는 했었는데, 지나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좋다는 걸 알게 되었던 좋은 경험이라고, 언젠가는 회고할 수 있겠다. 특별했던 이였고, 내가 오래 좋아했는데 사실 그것은 그가 보여주고자 한 모습만 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보니 그가 솔직한 것도 아니었고, 알고보니 나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알고 보아야 했던 것이 많았는데 너무도 모르고 보았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껏 그가 애썼을 수도 있었겠다. 이 모든 것이 추측인 이유는 그를 이해하려고 들기까지 내가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파도같은 우정은 때로는 너무 해악같다. 나는 가까워졌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파고 높은 변덕에 휩쓸려 때로는 많이 아프고 많은 밤을 지새웠다. 잘 먹지도 못했고, 잘 자지도 못했다. 가장 억울한 것은 자존심 때문에 그에게 그러한 내 상태를 토로한 적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그로부터 마음을 접기 위해, 또한 단점을 보기 위해 애썼다. 애쓴 만큼 그동안의 시간이 몹시 헛되었다. 




예전에 한 번 나의 친애하는 언니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아직 브런치에 기입하진 않았지만) 그 언니에게 최근의 마음 고생에 대해 토로했다. 다정하면서도 냉철한 그의 시선을 때론 나보다 신뢰하는 편이기 때문에 종종 정리가 안될때는 그를 찾곤 하기에. 사정을 들은 그도 내 마음 고생이 안됐는지, 아니면 아직도 친구를 찾는 내가 짠했는지 이제 정신을 차리고 맘을 굳게 먹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더 이상 순수한 애정을 바랄 수 있는 시기는 지났고,
그것을 예전처럼 해줄 수 있기엔 우린 너무 책임져야 할 게 많다고.     


이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나치게 가깝고 지나치게 격의없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사고뿐인가. 사고당해 파손당한 내 애정이 너무 처연했다. 그에 대한 배신감보다 내 처연함이 더 슬플 때도 있었다. 가장 슬픈 것은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정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짝사랑만큼이나 고된 마음정리였다. 그는 내가 생각한 것만큼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를 포용할만큼 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타인의 무수히 많은 단점 중 때때로의 빛나는 장점을 골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 역시도 답을 정해놓고 그의 단점을 필사적으로 골라내고 있었다.      



무려 유사연애라는 말로 그와 나의 관계를 한번에 정리해준 나의 재기넘치는 친구 M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라는 말이 있다. 만남이 있으니 이별도 있고, 떠남이 있으니 돌아옴도 있다. 오히려 이 새로운 사람에 대해 마음앓이를 한 덕분에 내 스스로의 장벽이나 마음 두께는 좀 얇아졌을 지언정, 그런 나를 위해 아낌없이 방벽을 세워준 주변의 친구들이 있었다. 나보다 더 분개해준 이도, 정적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이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휩쓸리고 마음앓이를 하는 걸 보고, 친구들은 상대방에게 다양한 단어들을 가지고 왔다. 유사연애, 나르시시스트, 찐따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말려들어가고 또 다시 차가워졌고 다시 뜨거워졌고를 반복했다. 


어떤 우정은 정말 연애와도 유사하다. 

이 기회를 틈타 글을 써보라고 조언하는 이도 있었다. 

분노는 힘이 세다고. 맞다, 분노는 정말 힘이 셌다. 글 하나도 뚝딱 완성이었다. 그의 수없이 이어진 가스라이팅과 유치뽕짝한 면모를 고발하기 위해서는 사흘 밤낮을 지내도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이해하고자 애썼고, 용서하고자 노력했으며, 지나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의외로 위로 받은 것은 오스카와일드의 사랑이었다. 불세출의 천재, 유미주의의 끝판왕의 삶을 산 그도 결국 사랑 하나 때문에 일생이 꼬였었지.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쨌든 애정에서 기인하지 않던가. 역사든 개인사든 반복된다는 신념과, "일생을 퍼다주어도 공허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하는 특명을 전달받은 나로서는 그의 일생과 사랑에 위로받았다. 



그럼으로써 덕분에 나에 대해서 더 알았다. 나는 그의 생각보다도, 또 내 생각보다도 덜 된 사람이었고 나는 생각보다 그런 나를 더 애정했다. 많이 아프고나니 더 이상 그에게 줄 것이 없었다. 나는 조각난 애정을 모아 다시 나에게로 던져줄 것이다. 내 애정을 모아 다시끔 녹여 내게 딱 맞는 온기를 느껴야겠다.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던 찰나의 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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