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경력이 꽤나 오래되었고, 스스로 요리를 해 먹는 걸 즐겨 자취요리를 포스팅한 적도 있건만, 날이면 날마다 편리함을 찾는 마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중시하게 되는 육아에 과감히 요리를 놨었다. 그러면서 요리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남편이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 조차 이제 생업에 과감히 평일 요리는 놓기로 했었다.
요리는, 특히나 한식 요리는 정말 특이한 것이다. 설거짓감에 반비례해서 요리 결과물이 소박하게 나온다. 하나를 해봤자, 그저 "반찬"일 뿐 양식이나 일식과는 또 다른 길을 걷는다. 특히나 야채요리나 나물요리를 할 때 느껴지는 그 허탈함. 또 요리하는 데 들이는 정성과 시간에 비해 보관의 기간은 얼마나 짧은지.
처음에는 쿠팡에서 로켓배송 쿠폰을 껴서 몰래(!) 산 290원짜리 콩나물이 시작이었다. 콩나물은 이름부터가 나물이라고 붙여져 있기에 무쳐볼까 했다가 우리 집 고기킬러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콩나물불고기 레시피를 검색했다. 하도 요리를 놓은 통에 맛술이 없는 거 빼곤 오히려 집에 부족한 게 딱히 없다. 양파도 있고, 대파도 있고, 혹시나 언젠가 쓸지도 모르니... 하는 생각에 남겨놓은 요리 부재료들을 꺼낸다.
콩나물 불고기만 하자!라고 시작했던 게...
쓱싹쓱싹 요리를 하자니 약간 떫은맛이 그리워진다. 저번에 아랫집에서 받은 주말농장 생깻잎을 꺼내서 몇 장 찢어본다. 아 그런데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네. 싸 먹기엔 너무 양이 많아서 볶아보려고 그것도 검색한다.
요리는 지루해지면 끝이기 때문에 핸드폰 상단에는 유튜브를 켜놓는다. 요즘 지락실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알고리즘이 얼마나 좋은지 지락실 다음 지락실, 그다음 또 지락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 다듬고 있던 깻잎 더미에서 부추를 발견한다. 부추도 곧 시들하다. 이러면 부추무침은 글렀고, 냉동고에 있는 오징어를 꺼내 부추오징어전을 냅다 만들어보려고 한다.
콩나물불고기는 이미 세팅을 해놔서 볶기만 하면 되고 전은 불 앞에 올려놨으니 뒤집기 전까지 깻잎을 다듬는다. 아쉽게도 살릴 수 있는 친구들은 별로 없다. 그래도 이게 딱 좋다. 우리 집에서 깻잎은 나만 먹으니까.
불고기는 다 끝냈고 설거지를 하고 웍을 다시 얹는다. 깻잎볶음을 하려는데, 깻잎을 데치려면 큰 냄비가 필요해서, 웍을 대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 화구에서 깻잎을 데치는 동안 한 화구에서는 부추오징어 전을 지진다. 전은 반죽까지가 귀찮지, 프라이팬에 올려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익는 게 참 예쁘다. 대신 기름을 어마어마하게 부어줘야 한다. 전에 달라붙는 카놀라유가 아깝단 생각을 한다. 뭐 하나쯤 볶아줘도 괜찮을 텐데...
냉장고에 감자가 있던가... 감자전을 해보려다가 강판까지는 꺼내지 않으려고 한다. 설거지 일이 커지니 감자채볶음을 해야겠다 싶다.(사실 강판을 못 찾았다.) 감자만 썰어놓으니 모양이 예쁘지 않다. 당근이 조금 남은 게 있던데 그걸 모양내서 볶아야겠다. 당근을 꺼내는데 하필 당근을 양파랑 같이 담아두었다. 양파도 한번 볶을까 싶어 슬쩍 하나 씻어둔다. 엄마가 양파를 볶아주면 그 냄새가 그렇게 간장 불고기 냄새 같고 맛있었지... 나도 하나 볶아보자.
20분짜리 지락실 영상은 벌써 3개째에 도달했다. 차근차근하다 보니 한 시간이 넘었지만, 깻잎볶음은 10분 양념이 스며들게 기다렸다 한번 더 볶으랜다. 오징어 전은 생각보다 부침가루를 많이 넣어서 4장 나왔다.
웃기게도 중구난방의 요리지만, 설거지는 그때그때 하는 성격이라 쌓아진 건 없다. 다만 쓴 칼을 또 씻고 또 씻고 하고 있는 게 번거롭다. 다 마치고 나니 콩나물 요리 하나만 해야지 했던 게 벌써
콩나물불고기, 깻잎볶음, 부추오징어 전, 감자채볶음, 양파볶음
이러려고...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이다. 내가 이래서 요리를 잘 안 하는 건데 하고 한숨을 쉰다. 한번 해볼까 해서 하는 게 꼭 손이 커서 과하다.
실컷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함지박만 하게 입이 벌어진다. 자기는 감자채볶음과 부추오징어전이 너무 좋단다. 냠냠냠! 엄마가 해주는 건 너무 맛있어! 너무 맛있어! 하면서 야식 아닌 야식을 먹는다.
제법 뿌듯하면서도 살짝 미안하다. 바쁘단 핑계로 그동안 요리를 못해줬지. 냠냠 먹는 입모양이 너무 예쁘다. 옆에서 같이 산책 다녀온 남편도 허기졌었는지 부추오징어 전을 후루룩 삼키고 있다. 아이와 남편에게 맛있어? 했더니 아이가 엄마는 반찬을 참 잘해! 한다. 남편도 간이 딱 맞네. 한다. 그래, 내가 이 맛에 요리하지.
요리는 참 신기한 것이다.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떤 결과물을 창출해 내는 것. 요리를 할 때만큼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게 없다.
예를 들어 남편은 요리를 하기 전 구상을 딱딱 해낸다. 이 음식을 만들고, 저 음식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들다가 하나씩 변칙적으로 얘도 하면 좋겠다 추가할 수는 있어도, 기조는 변치 않는다. 그러면서 남는 재료가 있다, 싶으면 남김없이 정리한다.
반면에 나는 요리를 하기 전에 구상이 별 게 없다. 냉장고의 재료를 보고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아 깍둑썰기를 해버렸네, 하면 그럼 볶음밥을 하자. 채를 썰었네, 그럼 뭘 하지, 얘를 추가할까. 저것도 써볼까 하면서 이모저모 추가한다. 그리고 남는 재료들이 아까워 또 다른 요리를 만들고, 또 다른 요리를 추가한다. 그러다 보니 요리를 계획한 시간보다 훨씬 많이 하고, 그것에 훨씬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
아이랑 같이 먹으려고 만든 콩나물 불고기 : 맵기조절에 실패했으니 아이와 먹으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맛있다...
요리에는 내 성격이 보인다.
그건 아주 좋은 발견이다.
나는 변칙적이고 즐거운 걸 좋아한다. 끊어내는 것을 잘 못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낸다.
요리는 때때로 지겹고, 때로는 재밌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이건 누구에 비해서,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 없이 그냥 "때로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