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들어요....!!!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양껏 고기를 먹고 아이고 드러눕고 싶다 하고 의자를 뒤로 젖힌 순간 정전이 됐다. 고깃집의 아르바이트 생들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다 창문을 열었다.
쾅!
쾅!
쾅!
정전이 되자마자 모든 전기가 나가 고기냄새와 가스를 빨아들이던 환풍구가 멎었고, 어차피 먹을만큼 먹어서 불판을 빼놨었던 터라 아유 우린 괜찮아 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테이블 환풍구에서 다른 테이블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까만 연기가 눈 앞에서 훅 나오는데 남편이 일어나자! 해서 빠르게 밖으로 대피했다. 재빨리 아이를 챙겨 이건 큰일나! 해서 밖으로 나갔는데, 정전이 됐으니 결제시스템도 완전히 멎어있었을 것이다. 먹통이고 깜깜한 가운데 여러 팀들이 고기연기와 매캐한 연기를 못버티고 겨우 뛰쳐나왔다.
건물 밖을 서성이는데 불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밖에서 기다리던 팀들끼리 서로 눈치싸움을 벌인다. 짐을 다 챙겨나온 팀들은 가도 되는지, 짐을 놔두고 나온 팀들은 언제 들어갈 수 있는지 계속 눈으로 확인한다. "그냥 가자" 소리도 들린다. 남편도 빙긋 웃으며 그냥 우리도 갈래? 한다. 문명인들은 이런 걸 지키겠지만, 나는 문명인 안하고 싶은데. 하면서 웃고 눙친다. 딸 둘을 데리고 킥보드까지 끌고 나온 옆 테이블 팀은 슬쩍 한걸음씩 뒷걸음질친다. 둘이 데이트를 나온 듯한 커플은 웃으면서 가자가자 한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내 삶의 가치관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순하게 생긴 외모와 웃는 얼굴, 유한 분위기 때문에 '착하다'로 통칭되는 호구취급 당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위악적인 행동을 하면 내 눈치를 보는 게 너무 속상했다. 도덕적인 사람일 것이라 넘겨짚고 자기들이 꾸미는 일에는 참여시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면 나는 일부러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하며 인내하곤 했다. 나도 너희처럼 적당히 나쁘고 비열하며, 그래 정확히는 너희랑 똑같으니 소외시키지 말아달라, 차별하지 말아달라는 생각의 짧은 발로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나는 깨닫고야 만다.
나는 착하게 살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착하게 살고 싶다.
누군가의 실수가 아닌, 사고로 인한 문제로 제일 피해보는 이가 쩔쩔매며 죄송합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 그 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사과를 계속 하며 양해를 구하고 있는데도 소중한 저녁시간을 망쳤는데 어쩔거냐며 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너무 비열하다. 누군가의 피해를 보고 어쩌냐~ 그냥 가버리자! 하며 정당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가버리는 이들이 너무 천박하다. 이 안타까움과 비열함과 천박함 속에서 엄마, 무슨 일이야? 불난거야? 하면서 답변을 종용하는 아이가 너무 애처롭다.
나는 아마도 지긋지긋하리만큼 착하게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약아빠지지 못했고 악착같이 이윤을 남기지도 못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쳐서라도 내 사람들을 지켜야지 하는 용기는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착하고, 선량하고, 친절하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바보같고 멍청하다고 비웃을 수 있어도 나는 바보로써, 비열하고 천박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착한 사람들이 승리하진 못하더라도, 패배하는 상황은 모든 것을 걸고라도 막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착한 것이 바보 취급 당하는 것은 더더욱 지리멸렬하다.
남편에게 그러지말자. 조용히 얘기하니 단박에 알아듣는다. 흔들렸지만 선량한 남편은 사태가 진정될때까지 몇번이고 포스기가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계산하고 돌아온다. 사장님도 고마웠는지 아니면 식사 중 놀라게 한 대가인지 아이 금액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이 "오! 우리 아이 껀 안받으신대! 감사합니다~!"하고 결제한다. 그리고 아이와 고깃집 한 켠에 구비된 오락실에서 신나게 오락을 한다. 우리는 단골식당을 잃지 않았고, 괜한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고, 경제적인 이득도 보았으니 결국 착함의 대가를 받은 셈이다.
내가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선량함이 비록 이 뿐일지라도, 언젠가 내 아이도 같은 상황에 낄낄대며 수지맞았다고 박수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가 크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에서도, 부디 엄마와 아빠가 보여준 아주 사소하고 작은 정직함을 마음 속에 촛불처럼 켜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