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우리 엄마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케이크를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 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 <성탄제>
1월이면 새해가 시작되지만, 막상 우리의 한 해는 3월에 시작하곤 한다. 새학기. 새학기를 위해선 반드시 마지막 학기의 마무리가 있어야 하며 그 마무리는 잠시 쉼으로 시작되고는 한다. 어쩔 도리 없는 겨울 방학의 끄트머리. 아이의 겨울 방학을 위해 엄마가 올라오셨다.
이번 겨울 방학은 더 특별하고 정신없었던 것이, 아이의 생일도 껴있거니와 갑작스럽게 잡은 이사일정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사택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후다닥 이사를 나갔다. 엄마는 담담하게 이사 시즌에도 함께 있어주겠다고 했고, 아이의 겨울방학이자 생일에도 돌봄을 자처했다.
엄마는 티내지 않고 일하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서로 간의 상의가 앞서야 하는 남편과는 달리, 엄마는 말없이 새로 이사간 집에서 자꾸만 뭔가를 옮기고 치우고 샀다. 집에 갈 때마다 다소 지쳐있는 엄마와 신이 나 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안락하고 편안한 경험이었다.
엄마~!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달려오는 아이 뒤로 슬그머니 지친 기색이 엿보이는 엄마를 볼 때면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했지만, 엄마에게만큼은 왜 그리 표현이 인색한지 고생했네, 우리 엄마. 그게 다였다.
아이의 생일과 내 생일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금세 아이의 생일 이후에 내 생일이었다. 매 해마다 내 생일과 아이의 생일을 챙겨주시는 시부모님을 집들이 겸 생일파티를 하려고 모셨다. 생일에 진심인 며느리를 아시는지라 늘 아이 한 번, 나 한 번 챙겨주시곤 하셨는데 이번엔 이사가 껴있어서 그러진 못했다.
-무슨 케이크 사오시라고 할까?
라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아이가 외쳤다.
초코케이크! 곰돌이 초코케이크!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아이의 선택이 받아들여져 어머니와 아버님은 그대로 초코케이크를 사오겠다고 하셨다. 남편은 어차피 케이크 다 못먹을 거 한 명이라도 많이 먹는 쪽 말을 듣자고 했다. 나는 입이 댓발 나왔지만, 맞는 말 같아 수긍했다.
간혹 그런 지점들이 있다. 모성애로도 덮어지지 않는 간극을 애써 모른척해야하는 순간들. 지금껏 살아온 나와 앞으로 살아갈 나를 봤을 때 당연하게도 주장해야 하지만, 지금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덮어지고 유야무야될 수 있다면 사소하게 구부려도 상관없지 하는 부분들 말이다. 식욕이 소화력 때문에 강제로 약해지게 된 나이에 들어서니, 식탐도 예전같지 않고 해서 그냥 끄덕거렸다.
아이의 재롱을 반찬으로 한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초코케이크에 얹어진 초에 불을 껐다. 점점 늘어나는 초 개수에 며느리가 민망할까봐 어머니는 숫자초를 구매하셨고, 나는 기꺼이 불을 껐다. 그리고 나는 곰돌이 눈 먹을래!! 하는 아이에게 초코 케이크 한 조각과 초코 부속을 건네 주고는 케이크는 정리했다. 어른들은 이내 과일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어머님 아버님이 귀가하신 후, 초코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슬그머니 남편한테 투정삼아 얘기해봤다.
-에이 몇 조각이나 먹는다구 그래. 나중에 내가 조각케이크 사줄게.
그 때 갑자기 삑삑삑삑 하는 도어락 소리가 들리더니, 엄마가 들어왔다. 손에 생크림 케이크를 든 채로.
언제 나갔냐는 물음을 할 새도 없이. 아나! 하고 건네주는 엄마의 손에서 그토록 받고 싶었던 생크림 케이크를 받고 나는 잠시잠깐 멈춰있을 새도 없이 철부지처럼 깡충깡충 제자리 뛰기를 했다.
소리를 지르는 나를 보면서 엄마가 빙그레 웃었다.
사실 케이크를 보자마자 울컥했지만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적 생크림 케이크를 그토록 좋아하던 오빠가 맨날 내 몫의 크림마저 발라먹을 때, 남은 보드라운 빵을 조금 남아있는 케이크의 생크림에 촉촉 찍어먹으면서 맛있다, 맛있다 했던 기억이 났다. 생크림은 많이 먹으면 느끼하니까 난 별로 안좋아해. 하고 오빠한테 제풀에 양보하곤 했던, 오로지 나를 위한 케이크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두 조각이나 잘라 먹었다.
한 조각은 오빠에게 뺏길까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티도 못내던 나를 위해.
한 조각은 철부지 아들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준비한 나만을 위한 케이크였다.
우리는 다시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생크림케이크도 맛있네! 하며 반 조각을 얻어먹었다. 남편도 조금 먹었고, 엄마는 몇 입 먹다 방으로 들어가서 좀 쉬겠다며 쉬었다.
강행군이던 이사, 생일, 사돈과의 점심식사 일정은 엄마의 약한 체력에 휴식을 요했을 것이다.
엄마가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근처의 빵집을 알아봐서 척척 걸어 그 날의 걸음 수는 꽤나 되었을 것이고.
딸들은 숙명적으로 때때로 엄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처럼 살아야겠다 싶을 때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 때 엄마의 서느런 손끝을 잊지 못할 것이다.
생일 현수막과 포토존을 준비한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딸은 딸이네. 나는 그렇게 못했다.
엄마는 남편이 준비한 현수막과 포토존을 잘 찍지도 않는 핸드폰 카메라로 담아갔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받은 사랑으로 충만한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