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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y 17. 2024

사랑하는 시엄마(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제목이 길어서 쓸 수가 없는 가수_브로콜리 너마저

그런 날이 있어

그런 밤이 있어

말하지 아마도 말하지 않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넌 말이 없었지만


그런 말이 있어

그런 마음이 있어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 있어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 있어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브로콜리 너마저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어버이날 이후로 시가모임을 가졌다.


어제 남편에게 살짝 어버이날 연락 한톨이 없었다고 서운한 티를 내셨다가 본전도 못건지신 관계로 어머니는 오늘 굉장히 상냥하셨다. 항상 착하게 굴던 아들이자 남편이 가끔 뗀뗀하게 굴면 얼마나 차디찬지 말도 못붙일 정도라, 어머니와 나는 억지로 소리를 높여 웃고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사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연락 문제로 얘기하실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바쁘지 않은 주말에는 항상 외손주에게 가계시기 때문이다. 예전같으면 먼저 어디냐고 전화하셨을텐데, 연이은 외손녀들의 출생으로 어머니는 지극히 즐거우시고, 지극히 고단하시다.



어디야? 
어, 00이네. 그냥 왔어. 


애기보고싶어서/그냥 와달라네/저녁 먹기로 했어 등등 다양한 사유가 덧붙여지는 전화 통화를 몇 번 하다보면 남편도 나도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는 응, 걔가 그랬니? 하고 시큰둥하던 어머니가 외손주들한테는 얼마나 극진한지 모른다. 00이가 얼마나 웃긴 줄 아니? 하면서 어머니의 외손주를 자랑하실 때 들어보면 다 우리 아이도 다 거쳤던 단순한 발달과정인데. 마치 너네는 모르지? 걔는 정말 특별하단다. 하는 어머니의 자랑섞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실 나는 남편의 편을 들고도 싶다. 그렇지? 어머니 좀 너무하시지? 하고. 우리 아이는 일하느라 바빠서 못간다고 아플 때 한번을 안와주셨으면서, 외손주가 감기로 콜록거린다치면 득달같이 연차를 내시는 걸 볼 때면 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역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구나 싶고 말이다. 


항상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자식들이 결혼해서 이룬 가정은, 항상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어머니들의 손이 잘 닿지 않는다. 나도 자식인데 말이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비난하기엔 어머니가 너무 가엾다. 퇴직하신 아버님이 마트에서 라면을 사셨다고 어머니께 엄마, 요새는 아예 놨어? 밥도 안해줘? 하는 남편의 괘씸한 말을 넘겨듣자니 이 놈의 k아들에 대해서는 신물이 나는 것이다. 





사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가장 큰 요새 고민은 이사다. 평생을 일해서 자가 2채를 소유하고 계신 어머니는 이제는 어디서 노후를 보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조금 진지하게 살 곳을 생각하고 계시다. 신중하신 성품에 가뜩이나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한 자식은 자기 아이들을 좀 봐주십사 하고 근처에 살았으면 하고 은근히 권유하고 한 자식은 엄마가 원하는 집은 다 비싼데 어디로 가고 싶냐고 닦달하는 걸 듣고있자니, 엄마의 삶은 대체 뭔가 하고 듣는 내가 다 허탈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착한 척 하는 나도 내 엄마에게 그런 마음이 들고야 말겠지.





하는 수 없이 그냥 

슬그머니 

어머니, 벌써 퇴직이 내년이세요?
얼마나 고생많으셨어요. 어머니 정말 대단하세요. 

진심 백프로의 말을 하며 손을 잡아드렸다.

나는 고작 회사원 삼년 차에 마음 속에 사직서를 몇백번은 더 썼는데, 

그걸 극복하고 정년퇴직까지 달리는 워킹맘의 삶은 얼마나 대단한가. 

정말 진심을 다해 말씀드렸다.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님과 나눈 짠 건배

종종 피곤하고 지쳐보이시던 어머니는 이제 항상 어딘가 다쳐 계시거나 감기에 들려 계시고, 그렇게나 집밥을 좋아하시던 분이 이제는 외식을 더 좋아하시고, 언제 돌아갈 지 모르고 손주를 데리고 찾아오는 자식들의 방문보다는 당신이 자식들 집에 방문하는 걸 더 좋아하신다. 


시어머니는 가장 높은 확률로 겪을 나의 미래다. 아들은 아빠를 보고 자라는 관계로, 남편은 나에 대한 행동들이 점점 어머님에 대한 아버님의 행동과 닮아가게 되겠지. 아내를 사랑하지만 존중하지는 않는 옛날 한국 아버지와 같은 아버님의 행동에, 또 그에 대해 대차게 반응하고 저항하는 어머님의 행동을 볼 때 나는 억지로 웃어넘긴다.  


게다가 나에게도 아들이 있으므로 나는 언젠가 며느리와 함께 토라진 아들을 위해 억지로 소리높여 웃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그나저나 결혼은 하겠지?) 내가 기른 자식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기르지 않은 사람과 서로 합을 맞춰야 하게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보면 아득한 기분이다.


즐거운 시가모임이었다. 나는 항상 어머니를 보면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안쓰럽고, 서운하고, 지난하다.

그 모든 잡다한 감정을 모두 모아서 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때로는.

절대 사랑한다는 말로도 차마 위로가 될 수 없는

그 지난한 시간들을 다 두루두루 거쳐오셨을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하는 어머니간혹 떠올리면

가끔은 나는 아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고야 만다.


열심히, 그리고 또 열심히 살았던. 속 시끄러웠을 청년과 장년의 시간을 거치고

이제는 내 상조보험을 너희가 드는 게 낫겠니, 우리가 드는 게 낫겠니 하고 상의해오시는

그 조금은 굽고 마른 등을 보고 있으면 정말 어떠한 위로로도 멈출 수 없는 마음이 엄습해온다.


나는 결국 또 이렇게 절대 미워할 수 없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한 명 더 만들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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