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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pr 12. 2024

작은 민들레 홀씨가 되어(봄은_신동엽)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를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봄은> 신동엽     


누군가 내게 네가 이렇게 30대를 보내고 있을거야. 라고 말했다면, 나는 기꺼이 이 길을 택했을까. 아이를 키우는 삶. 아이와 함께 하는 삶. 아이와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삶. 내 마음대로 여행을 가지도 못하고, 내가 버는 돈이 다 아이를 위해 지출되고, 아이의 안정을 위해서는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아이를 위해서 내 삶의 일부분과 내 생애의 일부분을 뚝 떼어 주는.

이런 황홀한 희생을 강요하는 삶을 택했을까.


주변의 비혼친구들은 나의 넋두리를 들을 때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그건 네가 선택한 것이잖아. 
결혼 안하길 잘했다. 
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만큼 멋드러지게 살 수 없어 미안할 뿐이다. 그렇다고 딱히 비혼친구들을 설득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다. 각자가 선택한 방식을 후회하지 않고 살아나가면 된다. 



요새 뭐해? 라는 질문만큼 답변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어렸을 적부터 얼마나 많이 이사를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주민등록초본만큼이나, 요새 뭐하냐는 질문에는 사소한 것부터 말하자면 정말 끝나지 않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다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뿐이지.


역사라고 하면 거창한 것이지만, 언젠가부터 소서사의 삶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이 보인다. 


나이들수록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세상사가 거창한 신념에 의해 커다랗고 크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과 작은 모양들이 모여서 작고 소소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 사소한 것들이 모여 행동이 되고, 사소한 행동이 모여 역사가 된다. 나는 그 역사를 이루기 위해 계속 사소한 것들을 모으고 있다. 모아서 움직이고, 움직이고, 또 움직이지만 간혹 두려워진다. 


단지 한 줄의 역사가 될까봐.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정도로 남게 될까봐.

그래서 요즘엔 원래 하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한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날이면 날마다 조금씩 쓰는 일기. 못 그린다고 생각해서 놓고 있던 그림. 다이어트 목적이 아닌 공격성을 기르기 좋은 운동. 급히 잡히는 약속들에 인상쓰지 않고 참석하기. 아이와 함께 한 일들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그리고 내 글을 쓰기.



더 이상 내 삶을 구하러 올 백마 탄 왕자님은 없지만,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들은 많다는 것을 깨달은 느긋한 30대에, 나는 봄꽃 길을 걷는다. 어딘가를 걷고 있다 보면 이제는 항상 아이의 생각이 먼저 난다. 


아이가 여길 참 좋아할 텐데. 아이가 여길 걸으면 이렇게 얘기했을 텐데.




아이는 겨울 느지막히 태어나 꽃샘추위 기간 동안 몸조리하게 한 뒤 예방접종을 맞으러 갈 때 엄마에게 기어이 봄꽃을 보게 했다. 가뜩이나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즐기던 나에게는, 아이의 생일과 이름, 모든 순간이 다 운명 같았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나와 처음으로 봤던 벚꽃은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꽃이었다. 감기 걸릴까 꼼꼼하게 양말과 모자까지 씌우고 조심히 아기띠를 하고 이 작은 생명체를 겨우 챙겨 나갔을 때. 아이의 머리맡으로 떨어지는 벚꽃잎들이 얼마나 유해하던지. 흩날리는 분홍 잎들에 가득 실려있을 꽃가루들과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병균이 나를 두렵게 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굴러가도 상관없었던 세상이 너무도 무섭고 너무도 두려웠다. 아기가 보고싶다는 친구들의 입과 손이 유해해보였고, 아기가 아이가 될 때까지 나는 두려움만큼이나 많은 제약에 시달렸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다. 그렇지만 그 재앙마저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무섭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겨우 알았다.


파손된 보도블럭을 지나가는 유모차를 들어주는 아주머니들. 

버스에서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있으면 갑자기 일이라도 생긴 척 바쁘게 자리에서 일어나주는 아저씨들. 

자기들끼리 시시콜콜 욕하다가도 아이가 지나가면 야야! 야!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멈추는 학생들. 

담배를 피고 있다가 아이를 보고 바로 천장 위로 담배를 쥐는 손을 들어주며 머쓱하게 서 있는 청년들. 

아이가 달래지지 않아 소란함을 일으키는 민망한 상황에 아가 귀여워 하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응원해주는 꼬마들. 


길가다 마주치는 아무렇지 않은 아무개들의 이야기가 들리고 보였다. 무섭고 아름다운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소소한 이야기도 보였다. 


사람은 단면적이지 않고, 가장 입체적인 무언가였다.

이렇게 아이에 대한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아이에게 안돼! 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혼내는 일은 모두 나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내가 살아왔던 방식에 빗대어 또다른 생명체를 키우는 일은 참으로 생소하고 생경하다. 더이상 놀랍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놀랍고, 놀라웠던 일들이 그럴싸해졌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모두에게 그런 것이다. 끊겼던 이야기를 이어가는 일. 누군가의 끊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보는 일.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궁금하지 않았던 일들이 궁금해졌고, 할 수 없을 거라 했던 일에 작게나마 도전해보고 있다. 



사람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역사가 된다. 

내 하루하루와 일상들이 단조롭고 무던하다고 생각되어도 그 모든 일상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안정과 거대한 지지가 되어 어떤 톱니바퀴가 되는 일에 대해 슬퍼하지 말아야겠다. 

톱니 하나하나가 맞아떨어지며 돌아가는 거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는, 


나처럼 작은 민들레 홀씨의 소소한 이야기가 반드시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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