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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노를 젓는가

남편 말고 제 사택에 거주합니다.

by 김작가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엄마가 항상 했던 말이자,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 중에 하나다. 엄마는 본인을 실패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느껴지는 뉘앙스로 스스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인생'이라고 여기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 그녀에게서 버젓이 이뤄진 나는 고스란히 엄마에게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무력감과 엄마를 고작 뒤웅박에 가둬버린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또래보다 일찍 결혼하려고 했을 때, 엄마는 시험도 붙고, 사회생활도 더 해보고 천천히 해도 되지 않냐고 말리려다가 결국 사주를 보고 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과 내가 네 살 차이라 궁합도 안 본다는 옛말이 맞아떨어졌는지, 남편과 내 사주가 궁합이 너무 좋다고 사주가들이 모두 극찬을 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결국 너 알아서 하라고 승낙했고 곧 나는 알아서 했다.

KakaoTalk_20230428_134850813.jpg 남편과 나를 캐릭터화하면 이럴 것이다. 항상 남편은 어? 하고 나는 으음... 한다. 알아서 잘 살고 있습니다 엄마...


결혼하고 나서 남편의 고향에서 신혼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어머니의 집과 서로 바꾸어 살면서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남편이 이직을 할 때, 엄마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랬어, 얘, 하는 소리를 한 두어 번이나 서너 번 정도는 더 했다. 그럴 때마다 애써 아냐, 그래도 일하게 됐고, 그래도 아이가 잘 크게 됐고, 그래도 엄마.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애써 자기변명을 했다.

남편이 또 이직을 하게 됐을 때, 엄마는 사위의 잦은 이직을 걱정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몰라, 엄마. 일단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하면서 절로 변명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래서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하더라~." 그놈의 이래서. 나는 항상 엄마의 빅데이터 속 '이래서'에 살고 있었다.




청약된 아파트를 잠시 세를 주고, 내 회사 사택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고 했을 때, 엄마는 드디어 뒤웅박팔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내가 선택한 집이어서 그런가. 엄마의 질문이 바뀌었다. "이제 앞으로 너는 어떻게 살려고?" 초등학교는 어떻게 해야 되나, 앞으로의 생활 터전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장기적인 플랜에 대한 질문이었다. 회사 사택은 일단 눈앞에 닥친 등하원의 어려움과 맞벌이 부부로서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해결방안이었기 때문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몰라?

우리의 낡고 작은 소중한 사택... 몰라 일단 살아봐


나는 아이와 4살 터울로 둘째를 갖고 싶었다. 남편의 이직으로 둘째는 그 타이밍에 갖기는 좀 어려웠다. 아마 내가 좀 더 빨리 가졌다면 모르겠지만, 둘째 고민은 평생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 계속 고민하고 있다. 아마 좀 더 늦게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별로 원하지 않고, 아이도 동생을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 내 회사에서 근로를 하고 있어야 사택에 거주할 수 있으므로, 둘째가... 있을까? 내가 세웠던 내 인생플랜은 자꾸 내가 아닌 다른 이유로 계속 어그러졌었다.


실은 나도 결혼을 엄마말처럼 느지막이 32살에나 하고 싶었다. 7년의 연애 기간 내내 결혼을 일찍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남편의 헤어지자는 강수에 내가 굽혔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하고 경제적, 가치관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현실보다 낭만에 발을 디뎠던 불안정한 사람보다 힘이 세다.

아이도 좀 신혼을 즐기고 낳고 싶었다. 그러나 웬걸 허니문베이비가 생겼고, 신혼 기간 동안 나는 종일 잤고, 먹덧으로 살이 쪘고, 금세 몸이 불편해졌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고, 고된 육아 덕에 순식간에 홀쭉해졌으나 대신 체력이 부족했다. 영아를 키우는 일은 내 체력의 170% 정도를 소진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좀 키우고 나서 친구들도 만나고 여유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홀몸이었던 친구들과는 만나도 할 대화가 없어졌고, 홑몸이었던 친구들은 이제 아이를 낳았거나, 임신 중이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더더욱 바빠졌고, 친구 중 누군가는 동네에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은 꿈이 되었다.

남편의 회사 출퇴근을 좀 더 편하게 할 요량으로 주택 청약도 남편 회사 근처로 넣었고, 감사하게도 당첨이 됐다. 내집마련! 남편 이름으로 된 게 옥에 티라면 티지만, 그래도 어쨌건 내 집마련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회사를 옮겼다. 아파트 완공 일자에 맞춰서 이사도 하고 아이도 유치원을 보내서 주욱 자라게 하고 싶었는데, 회사는 오히려 원래 집에서 더 출퇴근이 용이하다. 내 회사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보니 자꾸만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게 짐처럼 느껴졌고, 그 문제로 종종 다퉜다.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하면 되지 않냐,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지수만 가득한 5차 방정식을 푸는 거나 다름없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한 불안이 앞섰고, 무엇보다 비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지금까지 고생 많았고, 앞으로 고생 더 하자 같은 의미 없는 말이라니.


이게 진짜 나를 위한 건가?


지금까지의 삶은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다. 누가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할래, 너는 어떻게 할래? 하는 반강요 섞인 권유였다고 해도 승낙하고 행동한 것은 나였다. 그리고 내가 지금 누리는 생활 속의 소소함 속에 나를 전율케 하는 행복감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자꾸만 내가 대충이나마 세웠던 인생 계획이 어그러져서 삶이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 불안해져 온다. 이사를 고민하던 시기가 겨울이었는데, 겨울이라 그런가, 생각하기 싫어서 그런가, 겨울잠도 어찌나 잘 자는지. 이렇게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시간들 속에서 어서 흘러가거라, 라든가 될 대로 돼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다투기 일쑤였다. 점점 날은 다가오는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는 없었고 덕분에 자꾸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밀렸다. 그러면서도 답은 없어서 계속 기존 생활권에 대한 이별준비와 이사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직장도 그만둬야만 했다. 대출금이 생기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케어하는 데 몰두해야 하다니. 이게 맞나? 계속 맞나? 싶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 답을 준 건 상사와의 대화였다.


그것만 정해요, 계속 일하고 싶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질문에 계속해서 상사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차저차 사정이 있어서 제가 그 사정에 맞춰야 될 것 같습니다, 하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저는 사실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드리자마자 갑자기 해결책이 나왔다.


회사에서 사택이 있는 걸 아냐고 상사가 물어왔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 직장을 그동안은 어떻게 발 하나 디디고 다닐 수 있는 월급이 나오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사택이 있는 것도 몰랐고, 사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게 될 줄도 몰랐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직장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캐치했다. 사택으로 집을 옮기려던 과정에서도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렇지만 덕분에 아이도 직장어린이집으로 바로 보낼 수 있고, 회사와의 출퇴근도 용이해졌으며, 이미 구성된 생활권(심지어 기존 집보다, 이사 갈 집보다 훨씬 좋은)을 누릴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아이를 하원하는 남편을 도촬도 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아이는 사택으로 바로 간다 얘들아 내 뒤웅박 어때!?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삶의 키를 내가 잡고 있다고 비로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사정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이사 다니던 상황에서 벗어나 남들의 시선은 과감히 제쳐두고, 오로지 나랑 아이 그리고 남편 중 '나'를 1순위에 두고 내가 고민하고 결정해서 고른 선택.


여보! 내 뒤웅박에 타!


어찌 되었든 변화하는 삶 속에서 나는 또 적응을 해낼 것이다. 그것도 잘.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적응을 잘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인생의 노를 저어서, 그것도 열심히 열심히 노를 저어서 적응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배가 흘러가는 물살 급류에 타든지, 완만한 호수로 빠질 것인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종종 불안해져 온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내가 가려는 길이 맞는가.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몰아닥칠 때 특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일을 하지? 일을 하면서 무엇을 얻는 것이지.


그러다가 문득 한 번쯤, 일하다가 한 번쯤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타고 있는 배가 혹시, 뒤웅박 모양은 아니겠지?

지금 누가 키를 잡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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