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는 나에게 누가 육아조언을 해줄 것인가
요새 기준으로는 이른 나이에 결혼한 터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자유와 여유가 부러울 때가 있다. 동년배이던, 때로는 내가 더 어른 같기도 하고, 또 그만큼 그들의 사회경험이 더 많기에 때로는 그들이 훨씬 더 선배 같기도 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 중 단 한 명만 결혼했기에, 결혼과 육아의 경험을 동시에 공유할 수 있는 건 어렵디 어려운 상사뿐이다. 상사는 너무 바빠서 사적인 생활을 공유하기도 어렵지만, 생물학적 염색체와 가정에서 맡은 역할이 달라 우리 사무실에서 사실 기혼과 육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은 경험한 만큼만(대리경험이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 기혼과 육아의 최전선을 인터넷의 글이나 아니면 속 터놓은 친구들, 혹은 가까운 친지에게서 대강 경험한 동료들은 대단히 내가 힘든 걸로 알고 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주말이 지났는데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채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피곤을 뿌리며 어딘가 몸 한쪽을 절며(!) 다니고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꼬박 낮잠을 챙겨 자니까, 항상 월요일의 아침 인사는 "많이 힘드신가봐요, 00님" 으로 시작한다. 실은 할 말이 없으니까 그냥 안쓰러워하는 걸 수도 있고, 어쨌건 친구가 아니라 동료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이가 같고,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미혼과 기혼의 차이를 넘어서 우스갯소리를 공유할 때가 있는데, 오늘 나는 미혼과 기혼, 정확히는 자녀의 유무에 따른 커다란 경계선을 느껴버렸다.
회사 동료 중에 존경스럽게도 사내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으면 참지 않고 항상 솔선수범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이가 있다. 그리고 외모 가꾸기에도 신경 쓰는 편이고, 누구 하나 소외되는 것을 보지 못해 발언의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계속해서 질문을 하며 상대방의 답변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다들 어려워하는 상사에게 어려운 질문을 할때도 어렵지 않게 접근하고, 상사의 마음을 잘 살피면서 진입하기 때문에 no라는 답변을 얻어낼 때가 드물다. 선배들이 어려워하는 질문도 자기가 하겠다고 나설 때는 거의 성선설을 믿게 만들 정도다.
물론 사람인지라 다른 이들에게 이런 성향을 이야기하면 호불호도 갈리고 그 밖의 단점 역시 존재하긴 한다.
그래도 이렇게 사회적으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인간을 보면서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기보다 나는 이야, 동료의 엄마는 진짜 행복하시겠다. 내 아이가 이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제는 이상형이 이런 사람이 내 애인이라면, 남편이라면 어떨까?보다 내 아들이면 어떨까?를 생각하게 되다니. 이제 난 확실히 어디에서나 엄마구나. 알고 있지만 또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이상형인 이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하얀 피부, 큰 키, 안경을 쓴 지적인 분위기. 그야말로 외적으로 고고한 서생같은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상형인 자식에 대해서 말하자면, 충분한 사회성, 도전하는 용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근성 등 지나치게 이상적인 성품 등이 먼저 생각난다. 삶의 경험치가 누적되어 돌이켜보니,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없고 누구에게나 맞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만큼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았으면 좋겠지만, 우스워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할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널 수 있는 신중함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기원을 드리고야 만다. 그리고 오늘은 그렇게 하니까 정말 멋있는걸?이라고 말하고, 내일은 그렇게 하면 엄마는 속상해, 라고 말하고 만다. 아이는 엄마의 반응을 보면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한다.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버나드쇼의 비문이 떠오른다.
가끔 그 동료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책임감 있는 모습이나 본받고 싶은 모습을 볼 때마다, 저 분의 어머님은 대체 어떻게 교육을 시키셨는지 물어보고 싶다. 꾸준하고 변함없는 양육방침이 이렇게 아이를 하나의 어른으로 잘 길러낸 걸까?
예전에도 아이의 수영 체험수업을 가서 수영 선생님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선생님 어머니께서는 선생님 얼굴만 봐도 참 배부르시겠다고 매너 없이 함부로 생각했던 경험에, 또 이 경험 하나가 추가되서 점점 능글맞은 성향이 더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절대 입 밖으로 뱉지는 말아야지. 입단속이라도 잘 해야겠다. 너무 아줌마 같잖아. 안돼 안돼. 아 조심해... 입 열리면 안돼... 소셜한 동료는 기어이 다가와서 00님, 오늘 피곤해보이시네요. 하고 말을 건다. 아니, 맨날 피곤해보이잖아요... 눈이 반쯤 감긴 일주일의 첫 출근날에는 항상 입이 눈보다 빨리 열린다.
어머님이 ()()님을 어떻게 키우셨죠...?
p.s. 소셜한 동료는 간단명료한 듯 핵심 가득한 썰을 풀어주었는데 그건 나중에 한번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