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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 비장하지 않게, 그러나 너무 무심하지 않게.

by 김작가

오늘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부렸다. 퇴근하고 와서 식사준비하느라 정신없어서 잠깐만, 잠깐만 했더니 그새를 견디지 못해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한다.

엄마가 그 소리에 약한 걸 알고 있는 게다. 번개같이 아니야, 그런소리 하지마. 그런 미운 말 하면 엄마도 얘기 안하고 싶어. 했더니 입을 삐죽대다가 펑펑 운다.

식사준비는 해야하지 아이는 봐야하지, 답답한 마음에 왜 그러냐고 했더니 엄마는 어린이집에서 내가 뭐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잖아! 한다. 어이가 없어서 무슨 소리야, 엄마가 오는 내내 뭐했는지 물어봐서 오니가 얘기해줬잖아. 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종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며 성질을 내며 꺼이꺼이 운다.



분명히 선생님이 건네준 종이를 받아들고, 지하주차장에서 그게 어떤 종이인지 물어보고 설명도 들었는데 뭐지, 싶어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대충 얼버무리면서 그런데 오해한거야. 엄마는 항상 관심이 있어. 했더니 또 삐죽거린다.


이제 식사준비를 끝마쳤고 식사만 하면 되는데. 인내해줄 수가 없어서

"지금 밥 못먹겠지? 자꾸 그렇게 울고 성질내고 엄마한테 정확히 말 안해줄 거면 좀 이따 진정되고 먹어."

라고 했더니, 다시 꺼이꺼이 서럽게 운다.


몇 번을 참다가

"이제 그만해! 엄마는 말 안해주고 이렇게 짜증만 내면 더 받아줄수가 없어!"


하고 단호하게 얘기했더니 아이가 히끅대며 얘기했다.


엄마 주려고 색종이로 저고리 접어왔는데, 엄마는 관심도 없잖아~!
문제의 저고리.... 너무 잘 접어서 할 말이 없긴 했다....


하면서 서럽게 우는데 아차 싶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고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선생님이 쥐어준 종이가 아이가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부터 아이가 색종이로 뭘 자꾸 접어오길래, 고사리손으로 뭘 접는게 너무 신기해서 장난식으로 엄마한텐 뭘 접어줄거야? 학? 저고리? 하는데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저고리! 하고 대답했던 아이였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나빴다 엄마가. 하니까 대성통곡을 한다. 엄마가 "미안해~ 오니 마음을 몰랐네. 가져온 줄 몰랐어." 다독이면서 달래려고 했더니 이제 자기 감정을 인정받고 섭섭한 것이 당연해졌다고 생각한 건지, 아이가 마음을 다 풀지 못하고 접어온 종이학과 종이저고리를 찢으려고 들었다.

"엄마 주려고 가져온 거잖아. 찢지마. 부탁이야."


무려 부탁까지 했는데,

소용없었다.


아이가 찢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어서 표정을 굳히고 엄마가 그러지말라고 했지. 하면서 얘기했더니 찔끔찔끔 아직도 울음울던 아이가 움찔한다. 이제 엄마도 더는 못참아줘. 엄마가 하지 말라고 부탁했잖아. 했더니

"저고리는... 또 접으면 되지!" 한다.


화를 내는 방식이 그릇됐다고 지적하고 싶은 건데, 엄마가 갖고 싶던 종이저고리를 못받아서 화가 난 줄 알았나보다. 아이의 양팔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화내는 방식은 정말 좋지 않아. 열심히 노력해서 오니가 열심히 접은 걸 찢으면 엄마 마음도 아프고 오니도 아플거야. 이건 좋지 않은 거야. 얘기했다. 그러자 겁먹고 움찔했던 아이가 엄마 마음이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또 울며 안기려 들길래 풀리지 않았다고 거절했다. 지금 오니가 할 건 울면서 위로받는 게 아니라 엄마한테 사과해야해. 그리고 엄마는 지금 오니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 조금만 있다가 하자. 했더니 곧바로 아이가 미안해요 한다.


미안해요라고 해도 엄마는 지금 마음이 풀리지 않아. 라고 얘기하면서 이게 맞는 방향인가 고심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밥을 먹는 아이를 보다가 이내 마음을 풀고 바른자세로 먹는다고 칭찬했더니 식판을 싹싹 비웠다.

KakaoTalk_20230512_164009437.jpg 정말로 싹싹 비워서 마음이 다소 풀리긴 했다...


늘상 잘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아이의 징징거림을 너무 받아주는 건가 싶다가도 내가 화를 낼때 아이의 우물쭈물거리는 표정을 보면 너무 화를 냈나 싶기도 하고. 다른 집들은 체벌을 하기도 하던데, 아직까진 손을 올려본 적이 없어서 말로만 혼을 내는 게 너무 덜 혼내는 건가 싶어 아이를 망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자신있다. 그런데 아이가 잘못했을 때 혼내는 그 강도를 조절하는 게 긴가민가하다. 아이를 많이 혼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아이는 달라지는 엄마의 말투, 눈빛에 모두 과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면서 떼를 쓸 타이밍과 떼를 쓰지 않아야 되는 타이밍을 제일 잘 안다. 그러므로 또 나는 화낼 이유가 사라진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아이에게 계속해서 타이르는 것은 내 분풀이인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만큼 또 빨리 깨닫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초보엄마에게 제일 어려운 허들이다. 너무 비장하지 않게 아이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어떤 것인가. 또 너무 무심하지 않게 아이를 길러내는 방식은 또 어떤 것인가. 오늘 하루 동안 쌓인 비장과 무심 사이에 그 어떤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부모로서의 선택지이고, 그것이 결국 아이를 길러내는 방식이라면, 나는 아직 부모의 부도를 찾기는 멀었다.


근 한시간 동안의 실랑이는 다행히 내 칭찬과 아이의 식판 정리로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슈크림붕어빵이 먹고 싶대서 채비해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싶다고 해서 걸어가면 5분이요, 버스를 타면 1정거장 거리를, 태웠다. 버스 아저씨가 의아해하는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슈크림 붕어빵 6개를 사들고 엄마는 두개 줄게! 하면서 신이 나서 집에 뛰어가며 엄마 추워!! 너무 추워!!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잉어빵... 행복하니...? 4개는 기어이 아이가 먹었다. 붕세권이란 것은 참으로 달콤한 것이다.


붕어빵을 사서 나눠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이의 볼은 빨개졌고, 나의 기분도 많이 좋아졌다.


서로 붕어빵을 몇개 먹었냐고 세어보며 키득키득댔다.


그래, 제법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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