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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아이 (포포포매거진 당선작)

엄마의 모든 순간이 다 너일 수는 없음에도 사랑해

by 김작가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그동안 내가 가장 즐겨하고 즐겨했던 것들을 돌이켜보게 됐다. 과거에는 자신 있게 독서를 내밀었다. 글쓰기, 물론 좋아하지만 때로는 지칠 때가 있다. 독서, 마찬가지로 좋아하지만 글쎄, 사실 요즘 들어서는 인터넷 세상에 빠져 책 자체를 보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어디 가서 취미가 독서라고 내밀기에는 최근 발간작들에 대한 업데이트가 더디기도 하다. 그렇다고 인터넷 서핑이라고 얘기하자니, 사실 이건 거의 시간을 죽이기 위한 활동이나 다름없으며, 정확히 얘기하면 활자가 없으면 불안한 강박 같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디가서 취미는 인터넷 서핑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


내가 제일 좋아하고, 질리지 않는 것. 가장 좋아하고 항상 생각하는 것. 그건 내 아이에 대한 일이다.

취미는아이1.jpg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기. 잠든 아이 옆에서 입버릇처럼 내뱉곤 한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찾고, 아이와 함께 하는 활동을 위해 항상 대기 중이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달려간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아이와 놀기 위해 돈을 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내가 원했지만 아이를 돌보기는 어려운 일과 원하진 않았지만 아이를 돌보기 좋은 일 중에 나는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뺄 수 있느냐, 양해를 구해도 괜찮으냐가 일을 결정하는데 가장 1순위인 사람이 되었고, 팀 내 유일한 양육자로서 배려받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헌신적인 엄마 그 자체다. 어떻게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헌신적일 수 있냐며 내 친구들은 놀라지만, 실상은 그냥 내 안의 충족되지 못한 작은 아이가 내 아이의 유년시절에 기대어 함께 노니는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필요했던, 외로움을 많이 타던 아이가 드디어 제일 친한 친구를 찾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취미는아이4.jpg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되려 든든함을 얻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던 탓일까, 다행히 생각보다 육아가 고되지 않았다. 임신했을 때 몇 없는 육아선배들이 말했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아이가 100일이 되기 전 그 육아 선배들은 또 말했다. ‘오히려 지금이 제일 나을 때다.’ 아이가 걸을 때 육아 선배들은 또 말했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다.’ 아이가 말을 시작할 때 ‘지금이 제일 귀여울 때다.’ 그렇게 제일 좋고, 낫고, 예쁘고 귀여운 때는 그렇게 자꾸만 갱신됐다.


나는, 덕분에 자꾸만 행복했다. 지금, 지금,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침잠되지 않는, 바로 지금에 몰입하고 충실할 수 있는 현재가 너무나 행복했다.



주변의 친구들에 비해 일찍 결혼해 일찍 아이를 낳은 편이라 체력도 어느 정도 뒷받침됐지만, 결혼 전 불안정했던 삶에 비하면 생리적인 힘듦이야 버틸만했고 무엇보다 가정과 아이가 주는 안정감과 행복감이 너무도 충만했다. 항상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던 싱글 생활에 비해, 유부, 특히 엄마로서의 생활은 두 발을 반드시 땅에 디디고 있어야 했다. 필히. 이유 모를 우울감에 잠겨 새벽까지 버티는 시간이 없어졌고, 뜻 모를 불안감에 살아온 날들을 되돌이켜 보는 일들이 줄었다. 그 시간에, 아이를 안고 업어야 하니까. 아이를 지탱하려면 내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까.



가뜩이나 등센서도 심했고 엄마 껌딱지였던 아이였기에 어렸을 때는 거의 종속되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들 혀를 내두를만큼 나는 아이에게 빠져들었다. 친정엄마마저도 너는 내가 낳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안 키웠는데 모성애가 대단하다고 했다. 이게 모성애일까? 모르겠다.



그저 항상 부족했고 갈망했던,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난 우물 같던 감정 주머니가 아이를 낳고 나서 온전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착한 딸이 아닌, 말 잘 듣는 모범생이 아닌, 잘 맞춰주는 친구가 아닌, 참한 애인이 아닌, 그저 어떠한 조건 없이 온전히 존재하는 것 자체로 아이에게 사랑받는다. 어디서나 오로지 엄마를 찾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대체 세상의 어느 누가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없겠지. 세상에 태어나서 아이만큼 사랑한 존재도 없었지만, 아이만큼 나를 사랑해준 존재도 없을 거란 생각도.


취미는아이5.jpg 내 나이 nn살...... 누가 이렇게 박력넘치게 뽀뽀해주냔 말이다

일부러 수면 교육도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마음 약해서 누가 우는 걸 견디지 못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이가 잠에서 깨고 난 후, 까마득한 저 멀리에서 팔베개해주고 있는 엄마를 알아보고 배시시 웃으며 눈에 날아와 박히는 별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을 위해 일부러 자고 있는 아이의 옆에 기어 들어간 적도 여러 번이다. 따뜻하고, 몽글한 그 순간들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의 아름다운 단어들이 모여 그 순간에 대해 묘사하기 위해 고심한다고 해도 무슨 말로도 부족할 게다.



나는 언젠가 아이가 ‘엄마 난 이제 혼자 잘래.’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울면서 웃을 것이다. 다신 돌이킬 수 없는, 좋아하는 시간의 일부분을 혼자 이별해야 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지 미리 상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즐거이 여기는 시간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수업, 아이와 함께 가는 소풍, 아이와 함께 갔던 맛집 탐방, 아이와 함께 갔던 박물관, 미술관, 텃밭, 영화관, 놀이공원 등등 아이가 자라고 성장한 이 5년 동안 수없이 울고, 화내고, 짜증냈지만, 단 한번도 진심으로 지겹진 않았던 내 취미. 지금 내 아이의 나이보다 아이들을 더 키워낸 사람들은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며 나를 격려하기도, 위로하기도 한다. 언젠가 지나버리고 나는 이 순간들을 회고하게 될 것이다.


반짝거리는 내 아이의 어린 날들, 그리고 그에 따라 흘러간 나의 젊은 날들.



사실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있는 오늘이 나에게는 최고의 나날들이다. 늘 그랬다. 아이가 가장 예쁠 때라던 시기는 진작 지났지만, 날마다 날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나날들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쥐고 있고 싶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다. 계속 똑같은 포즈, 똑같은 얼굴, 똑같은 장면이어도 하나하나 다 다르다. 나날이 나날이 내일은 또, 이번 주말은 또, 이번 해는 또 어떻게 이 취미를 키워볼까 하는 생각에 설렌다.

취미는아이3.jpg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투정부리고, 껴안는다. 그게 당연하니까.

내 사랑 취미는 오늘도 두시간을 꿈나라에 가기 싫다고 투정 부리지만, 내일은 또 어떤 꿈을 꿨다며 엄마 안아줘, 하며 안겨올까. 또 그리고 어떻게 반짝이는 눈망울을 빛내며 엄마 내 옆에 있어줘, 라고 속삭일까.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또 설레게 만드는 나의 취미.

나의 취미는 아이이다.


**포포포매거진 지면을 드립니다 독자 부분 당선작**

감사드립니다. 포포포매거진 편집자분들...! 덕분에 몇년간의 사진을 훑으며 추억에 잠길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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