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아이가 아프다. 단순 감기가 아니라 열감기여서, 아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스트레스가 한 겹 더해진 느낌이었다. 내 스트레스는 스트레스고 아이는 또 열이 나니 평소보다 유순하고 느리게 움직였다. 천천히 감았다 뜨는 눈을 찬찬히 응시하며 제발 아프지말아다오, 하고 아무에게나 아무렇지 않게 빌었다.
나는 잔병치레가 없었던 대신 한 번 앓았다 하면 일주일 동안 아프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엄마는 그 얘기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웃었었는데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딸이 아팠던 얘기를 하면서 웃냐고 조금 속상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가 그 얘기를 웃으며 할 수 있기까지 그녀는 무수히 많은 신을 찾고 지독하리만치 기도하고 오랜 시간을 담금질하며 버텨온 것일 거다.
아이가 엄마 손은 약손을 해달라고 했다.
엄마 손은 약손~ 아프지마라~ 아프지마라~
열이 나면 일단 붙여주는 열패치, 금방 뜨끈해지지만 저거라도 붙이고 있으면 마음의 안정이 된다
하고 노래를 부르며 배를 문질러 주는데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엄마 이건 원래 노래인거야?
하고 묻는다.
엄마도 몰라. 엄마도 엄마가, 씽씽할머니가 그렇게 불러줬어.
하니 아이가 몇 번 더 따라부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씽씽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야?
엄마의 엄마지.
엄마도 이거 들으면 안 아팠어?
응, 안 아팠지.
했다.
졸린 듯 눈을 부비던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엄마의 엄마도 엄마를 이렇게 사랑했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귀가 좀 약했었나보다. 7살 때였나, 엄마가 얘기하는 걸 잘 듣지 못해서 산만하다고 혼나곤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등뒤에서 얘기하는 것도 못 들어서 결국 청력검사를 위해 이비인후과를 가게 됐다. 알고보니 중이염이 너무 심해 고막에 물이 가득차있어서 의사가 엄마에게 이제 왔냐고 타박하고는, 바로 고막을 째고 물을 빼냈다. 마취도 안해준 터라 너무 아파서 울며 엉엉거리느라 엄마가 무자비한 의사 앞에서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었는지 발을 동동 굴렀는지 그건 기억이 희미하다.
다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집으로 가는 먼 길 내내 키도 작은 엄마가 족히 20키로는 되는 나를 업고 가면서 계속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 그 뒤로 귀가 에리다고 하면 왜 이렇게 어린냥이 심하냐며 혼자 자라고 했을 것을 항상 노래를 부르며 잠들때까지 업어주었던 것.
나는 아이가 아프면 아직도 항상 안아주지 않고 업는다.
그게 더 오래 버틸 수 있으니까.
어머니가 애 자꾸 업어버릇하면 힘들다고 왜 업어주냐고, 길가던 사람이 애가 컸는데 엄마가 힘들겠다고 해도 아직도 나는 아이가 아프다고 칭얼대면 누구 앞에서건 일단 업는다.
이건 내가 업어준다기보단 아이가 업힌 것이지만.... 어쨌건!
그게 애 버릇을 나쁘게 하든 남들이 힘들어 보이든,
어쨌든 내가 배운 사랑의 방식이라서.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할수 있을까 걸으면 아프다고 우는 딸을 달래 그 먼 길을 업고 터덜터덜 걸어가던 엄마의 심장 고동 소리와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남아있어서.
세상의 모든 자식이 아프지 않고 크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내가 그러지 못해서 아이한테 차마 바랄 수는 없다. 다만 아이도 언젠가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존재를 만나게 되거든 사랑받았던 기억을 간간히 떠올려주기나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