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시락도 락이다
나는 개발자이지만 비교적 외향적인 편이며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밴드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작년 6월부터 직장인 밴드를 시작했다.
썩 좋은 실력은 아니지만, 멤버들이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어 세컨 기타로써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엉망진창 와진창이었지만 공연도 해보고,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던 공연을 한번 더 해보기로 하면서
한 명의 어엿한 기타리스트로써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페달보드를 제작해 보기로 했다.
페스티벌이나 가수들의 콘서트 현장에서 기타 세션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발치에 직사각형의 장난감(?)들을 모아놓은 기계 장치를 볼 수 있다. 간혹 기타리스트들은 쭈그려 앉아 DJ마냥 그 장치를 사부작사부작 열심히 만지기도 하는데
그 장치가 바로 페달보드이다.
페달보드는 다양한 이펙터들의 집합체인데, 이펙터란 일렉트릭 기타의 전기 신호를 다양한 방식으로 왜곡해
훨씬 더 다이내믹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옛날 시절에는 이펙터란게 없었기에 오로지 기타 자체의 소리와 앰프의 내장 이펙터에만 의존했고,
오늘날의 몇몇 기타리스트들(한국의 '리치맨과 그루브 나이스'의 리치맨)처럼 이펙터 없이 순수 기타와 앰프의 소리로만 멋진 사운드를 보여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펙터를 이용해 훨씬 다양하고 강력한 사운드를 표현해 낼 수 있기에 오늘날의 기타리스트들에게는 거의 필수인, 기타와 더불어 본인의 분신과도 같은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이펙터들은 종류(드라이브 계열, 모듈레이션 계열, 공간계 등등), 만든 회사, 만든 연도 등에 따라 사운드 및 표현 영역이 천차만별이기에 기타리스트들은 오직 취향만을 가지고 본인들만의 페달보드를 구성한다. (이펙터의 배치 순서에 따라 페달보드가 표현하는 소리도 변화한다.)
나는 기타, 페달보드, 연주를 요리에 비유하곤 하는데
닭볶음탕에 비유하자면
기타 = 닭
페달보드(이펙터) = 양파, 감자,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등등
연주 = 조리법(실력)
어떤 기타를 쓰느냐, 어떤 이펙터를 쓰느냐, 이펙터의 설정 값을 얼마만큼 넣느냐,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매콤하기도 슴슴하기도, 전통의 닭볶음탕 맛집의 강력한 맛을 내기도, 요리라곤 해본 적 없는 갓난 자취생의 무근본 맛을 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Moore 사의 ge200이란 멀티 이펙터부터 시작했다. 멀티 이펙터란 아날로그 방식의 이펙터들을 모아놓은 페달 보드를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축소시켜 놓은 편리한 장비로, 초보자들이 다양한 이펙터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공부하기 좋은 장비이다.
허나 중저가형 멀티 이펙터의 고질적인 단점은 바로 '드라이브 계열 사운드 퀄리티가 아날로그 이펙터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기에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아날로그 이펙터(꾹꾹이) + 멀티 이펙터 조합을 사용한다.
(통칭 멀꾹이)
나도 야금야금 중고거래를 통해 모아놓은 꾹꾹이들로 멀꾹이를 만들어 보았다.
처음치고는 제법 마음에 들었지만 빈 공간에서 나오는 허전함과 블랙 계열의 색상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컬러 매치로 인해 결국 유닛교체를 하게 된다.
기타 -> 폴리튠 3(튜너) -> demonfx dual gun(드라이브) -> dark matter distortion(디스토션) -> spark mini(부스터) -> ge200(앰프&캡 시뮬, 모듈레이션, 공간계 담당) -> 앰프 return
Mk. 2에서 변경된 유닛은
튜너: 베일톤 -> 폴리튠 3 mini noir(튜너가 제일 좋다(?))
드라이브: Boss SD-1 -> demonfx dualgun
파워 서플라이: Red block -> radix6
특히 파워 서플라이는 굉장히 중요한 장비인데, 각 이펙터들을 구동시키는데 필요한 전력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허나 저가형 파워 서플라이는 '공통 접지'라는 방식이 차용되어서 불필요한 노이즈가 발생할 확률이 크지만
저 Radix6라는 친구는 저가형임에도(약 10만 원) '독립 접지'라는 방식이 차용되어 노이즈가 덜하다.
(사실 낙원상가 '해성 악기' 사장님의 판매 기술에 홀라당 넘어가 산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멀티 이펙터만 썼을 때와 사운드의 퀄리티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나, 하늘과 땅 차이는 아닌 것 같다.
들인 비용에 비해 만족스럽긴 하지만 저렇게만 제작하는데도 내 기준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긴 했다.
그러나 사운드를 떠나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악기 구입 제1순위 조건은 바로 악기의 외모이기 때문에
Mk. 2의 무채색 이펙터들의 색 조합이 나로 하여금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게 한다.
또한 패치 케이블과 dc 케이블 등 배선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도 페달보드 제작의 나름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이다.
장비 탓은 하지 않으리라..
https://youtu.be/rb53-sDII0o?si=Zfuh7TgRXqzYA_Z9
Stevie Ray Vaughan & Double Trouble- Voodoo Ch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