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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기리상 Aug 24. 2021

아무도 다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한테 관심이 많아 vs 관심이 없어


 이전 글을 쓰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문자로, SNS로, 댓글로, 또 직접 연락을 주셨다. 잘 읽었어. 눈물지었다. 고생했다. 너는 강한 사람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혼자 떠들기를 시작한 나는 역시나 혼자 떠들고 있는 중인 줄로만 알았는데, 서로가 수줍어지는 고백과 응원을 들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마음 한켠엔 다시금 반성의 기운이 들었다.


 엄마를 위한 글이라고 했지만, 사실 조금은 엄마가 그 글들을 보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엄마는 의도치 않게 엄마의 과거를 드러낸 셈이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심각할 정도로 털어놓지 않는 분이라, 내 이야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올리고 나니 엄마가 화를 낼 것 같기도 했고, 엄마가 화를 내면 나는 엄마한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골똘히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엄마의 첫마디는 예상 밖이었다.


어제 네 글을 읽고 목이 메더구나.
부모라고 자식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지 못했고, 나도 내 부모처럼 삶에 허덕여 자식들의 상처를 더 보듬지 못했어.


 혹시 내가 엄마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건 아닐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존중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글을 올리고 나서야 물밀듯 밀려왔다.

 엄마를 위한 글이라고 했지만 나를 위한 글을 쓴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렸을 땐 다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집은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가족 구성원은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기까지 수많은 어색함과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랬던 그때,  엄마를 더 지켜주지 못했던 죄책감을 지우고 싶었고, 엄마의 남편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 자신감이 없고 불안정한 나를 이해받고 싶었다. 그것을 무덤덤한 척 글로 남기면 내 상처가 우아하게 포장될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그저 내 이야기를 한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을 빼놓고는 내 이야기를 쓸 수 없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부끄럽게도 내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외면해버리는 글이 되었다.


 그렇게 쓴 글에서 결국 엄마는 한때 무기력했던 사람, 엄마의 남편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도 매 순간 정신승리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엄마가 변했다’ 글을 모두 읽은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엄마 :
내 가족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건, 내 얼굴에 침 뱉는 일이야.
가족은 한 사람의 허물이 모두에게 물드는 공동체라, 한비와 정서방에겐 안 그래도 미안하고 창피한데 굳이 드러내서 좋을 게 없잖니.
내가 예전에, 친정 올케들한테 아빠가 속 썩이는 이야기를 했더니 나중에 조카들이 날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더라.
오빠들은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너도 뭘 잘못했을 거라고 하고, 조카들은 이모처럼 살까 봐 결혼 안 하겠다는 거야.
내 입에서 나간 말들이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위로하면서 즐기는 경향도 있지.
정서방도 장인이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자 좋을 게 없잖아. 내가 정서방 볼 면목이 없다.


 정말 엄마의 말이 맞는 걸까. 그래도 나는 센 척을 했다.


나:
엄마를 좋게 바라봐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 곁에서 자존감을 높이면서 살아야죠.
그러게. 그러니까 사실 이게 현실인데, 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게, 심지어 좋아 보이려고 애쓰면서 삽니까. 받아들이고 털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다른 사람들도 더한 흉을 많이 드러내고 살아요. 아니, 근데 그게 왜 흉이래.
자기가 아니면 아닌 거지, 누가 자꾸 마음대로 흉이라고 하냐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아픈 과거를 흉보는 사람들은 엄마 인생에서 이제 놓아버립시다.


엄마:
난 그게 잘 안되더라.


나:
어떤 사람들은 투병일기를 쓰면서 자신이 상처 받았던 기억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해요.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은 과연 ‘저런 걸 왜 올려’라고 생각할까? 그건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엄마를 가벼이 보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산다고, 그 사람들 눈에 비치는 모습대로 엄마 자신도 엄마를 그렇게 평가하지 마세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그런데 사실 나도 안돼요. 그냥 나도 매 순간 정신승리하는 거예요. 마인드 컨트롤.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과거가 있었다.

 대학교 때, 연구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선배가 어느 날 말을 걸어왔다.

 대단히 어려운 정보를 묻는 것도 아니었고, 평범한 질문이었다.


선배 : 은지는 요새 학교 다니기가 어때? 실험은 재미있어? 힘든 일은 없고? 학교에서 집까지는 얼마나 걸려?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그래서 오빠 왜요, 하고 되물었더니 선배가 대답했다.


선배 : 그냥. 문득 너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아서.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은지에게 관심이 많단다.


나 : 어, 저는 사람들이 저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요.


 대학 시절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묻는 것은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했던 이런저런 행동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나에게 선배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선배 : 은지야, 사람들은 생각보다 은지한테 관심이 없단다.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뭐야. 며칠 전엔 관심이 많다고 해놓고, 지금은 또 관심이 없다고?

 그냥 지나쳐갈 질문이 매해 나를 따라다녔다.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사람 사이엔 적당한 교류도 중요하단다. 괜찮으니, 너를 드러내는 일에 너무 눈치 보지는 말아.’

그런 의미였을까?




어차피 남을 사람은 남아.



 나도 사실 눈치를 정말 많이 보고 살았다. 남들의 반응을 신경 쓰느라 나 자신을 챙기지 못했다.

 회사에선 연구가 늘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일머리 없는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을까 봐 잠이 오질 않았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SNS를 하면 이전 직장의 사람들이 내 사진과 글을 보는 게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내가 퇴사를 하고 잘 살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퇴사의 사유대로 내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게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점차 마음이 바뀌어 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 마음의 편인 듯 아닌 듯 나를 교묘히 쥐고 흔들던 사람도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니 별로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고, 무뚝뚝하게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면 따뜻하고 조용한 응원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아주 쉬운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 누구에게나 해줄 수 있는 말인데 언제나 조바심이 나는 그 말.

 어차피 남을 사람은 남아. 그런데 누가 남을지는 지금의 나도 모른다. 당신도 모른다.


 그저 풍파를 함께 하며 오랜 시간 함께 견뎌온 인연이 있고, 순간을 스쳐도 온기가 오래 남는 인연이 있다.

 곁에 붙들고 싶은 인연임에도 흘러가버릴 때가 있다. 그걸 붙잡겠다고 함께 휩쓸려가 버리면, 나는 과연 이곳을 떠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여기 이 자리에서 나를 소중히 여기는 인연들과 함께 잘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가끔 장판 밑의 곰팡이 확인하듯 궁금할 땐 들추고 외면하고 싶을 때 덮어버리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역시나 가끔 타인을 의식하곤 뒤를 돌아보겠지만.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아무도 상처 받지 않는 글을 쓰고 싶지만.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서 그런지 어려운 숙제는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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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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