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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기리상 Sep 07. 2021

친절에 대한 이야기

세상의 모든 임산부 화이팅. 30일 에세이 일곱 번째.


 만삭의 몸으로 천천히 전철역 계단을 올라가는데 뒤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확 밀쳐냈다. 거의 넘어질 뻔했던 상황이었다. 뒤돌아 내 배를 본 할아버지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분명 미안했지만 다치지 않았으니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으리라. 아찔했던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은 채로 유난히 북적이던 퇴근길 전철에 몸을 실었다. 피곤한 직장인들에게 배부른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양보를 강요하는 것 같아, 몸을 돌려세우고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순간 어느 분이 사람들을 비집고 나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셨고, 손사래 치는 내 팔을 조심스럽게 끌어 자리에 앉히셨다. 앞선 일로 기분이 상해있었는데, 덕분에 감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집까지 갈 수 있었다.


 사실 임산부 배지를 달아도 출퇴근 시간의 임산부석은 늘 비어 있지 않았고, 노약자석에 앉으면 어르신들의 눈총이 따가웠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배려를 받게 되는 날이면 내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분을 만난 이후로는 나도 한번 더 손을 뻗게 된다. 서 있는 임산부가 없는지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자리를 찾는 백발의 할머니를 한사코 모시고 와 앉혀드리곤 한다.


 솔직히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친절은 사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보다, 내가 받은 배려가 고마워 다시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이 더 많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렇게 전이된 친절한 감정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들을 변방으로 밀어냈고, 또 다른 친절을 불러냈다.


 아마도 ‘나에게 배려하지 않았으니 나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나는 안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배려를 받았으니, 나도 함께 나누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욱더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 사람의 친절 덕분에, 사람이란 늘 자기 생각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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