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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강주 Mar 18. 2023

베를린에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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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건강에 관련해 상상력이 뛰어난 편이긴 한데, 이 못된 상상력이 베를린에 오고부터 더 활개를 친다. 집이 건조해서인지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굴 때마다 목에서 피가 나오고, 변색이 탐탁지 않거나, 가슴에 멍울이 만져지거나, 체취가 달라지거나하는 것들. 왼손 검지의 사마귀가 드디어 완치됐나 싶더니 그 옆 중지에 사마귀가 생겼다. 화가 난다. 얼마나 또 징그럽고 쓰라리고 못생겨질까? 새로 생긴 사마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른쪽 손바닥 그리고 왼손에 가끔가끔 나있는 물집 –과 굳은살 중간의 어떤 것- 과 똑같이 생겼다. 엄마한테 이걸 보여줬을 때 엄마는 ‘못되게 굴어줘. 자꾸 뜯으려고 해 봐. 더 안 생길 거야.’ 라고 어색하게 말했다. 왜 어색하게 말했냐면 내가 베를린에 오기 직전 한창 예민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전히 아프면서, 여유로운 주제에 나를 닦달했고. 아마도 떠나기 전날 엄마와 치킨을 먹으러 가서 그 이야기를 나눴던가, 아니면 그전에 버거킹에서 공부하고 있던 엄마의 얼굴을 잠깐 보러 갔을 때 엄마가 그 말을 했을 것이다. 그 기억을 되짚어보는데 문득 기분이 이상했다. (이 문장을 바꿔보고 싶지만 그 어떤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정말로 기분이 이상했다.) 새삼 엄마와 대화를 마지막으로 나눈 것이 정확히 3개월 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3개월 동안 엄마를 만지지 않고 엄마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못했다니. 이상하다. 그렇게 살았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엄마를 3개월이나 만나지 않았다니. 엄마의 노화를 지켜보지 못한다는 것도, 엄마가 나의 성장을 지켜보지 못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요즘은 기억력이 점점 짧아져 간다. 집중력도 마찬가지다.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30초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리셋된다. 그래서 친구와 통화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꾸준히 뭔가를 했다는 기록이 남으니까. 아, 생리예정일이 지난 9일째 아직도 생리가 시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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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가벼운 목감기인 줄 알았는데, 아스피린 몇 번 좀 챙겨 먹으면 나을 것 같아 내비 둔 것이 화근이었다. 이틀 연속으로 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나서 학원에서 헤롱헤롱하더니만 집에 와서 삼겹살을 먹고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서 그런가?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화요일에도 먹었다. 잠이 와서 그렇겠지, 싶어 잠을 잤는데 내리 6시간을 자면서 계속 뜨거워- 뜨거워- 하면서 잤다. 이러다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아냐, 겨우 감기인데 뭘-싶다가도 고열의 감기로 인해서 하반신이 마비됐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헬렌 켈러도 4살 때 고열의 감기를 앓다가 장애가 생겼잖은가. 무서웠다. 자고 일어났는데 귀가 안 들리면 어쩌지, 일어날 수 없으면 어쩌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하는 나의 무례를 이해하는 건 고사하고, 도리어 나를 웃겨주기까지 하며 의사와 약사 같은 조언을 해줬다. 친구가 시키는 대로 수건을 물에 적셔 몸에 문질렀다. 괜찮아졌다가 또 아프면 반복했다. 며칠 전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가 비상약을 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태가 나아져서 다음날 학원에 갈 수 있었다. 조금은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마지막 등교 날이어서 가길 잘했다고,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라고 생각했다. 학원에 다녀오고 나니 다시 아팠다. 또 내리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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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아프면 더 서럽다는 말. 정말 그렇다. 아픈 거 싫다. 그리고 나는 생리를 아예 한 달을 건너뛰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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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는 모르나 베를린은 몇 년째 배수관 공사를 한다고 들었다. 내 아파트도 배수관 공사를 피해 갈 수는 없었는데, 멀쩡한 화장실을 뜯어고쳐야 한단다. 덕분에 나는 3주간 내 화장실이며 부엌을 쓸 수 없어 학원이 끝난 후에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하루 바깥 음식으로 연명하고, 매일 씻지도 못하며, 양치하러 옆 동의 아파트까지 가야 했다. 그렇게 살라면 살 수 있다. 다만 다 죽이고 나도 죽고 싶어지는 성질머리 때문에 그렇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속으로 삭이며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불행해 나는 불쌍해 나는 참 안됐어 … 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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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글로 남기고 싶지도 않을 만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나에게 ‘너는 네가 말했던 것처럼 불쌍해 보이지 않아.’ 따위의 말을 했다. (이는 그가 나에게 했던 망언들을 엄청나게 압축한 한 문장이다.) 그의 문장은 내 뇌리를 강타했기 때문에, 특히나 나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 때 ‘내가 지금 객관적으로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맞나?’하는 질문과 함께 문득문득 떠오르고는 한다.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 얼마나 불행하지 ‘않’을까? 또는 얼마나 행복하지 ‘못’할까? 여기에 일일이 풀어쓰지는 않겠다. 무의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인생은 으레 표현되듯이 그래프로 그려질 수 있는 2차원적의 존재가 아니고,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에는 보여지지 않는 이면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고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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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에는 딱 한 달간 유럽의 5개국에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에 다녀온 후 여행의 감상에 젖기가 무색하게 궁핍했다. 베를린을 가기 위해 용돈 벌이를 하러 알바도 여러 번 지원하고, 두세 달간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때 미친 듯이 힘들었지만 내가 자주 위안을 삼았던 생각은 앞으로 가게 될 베를린도 아니고, 유럽에서의 마법 같은 추억들도 아니고 카페에서 유럽 여행 계획을 짜던 시절이다. 여행 가기 6개월 전 티켓을 사고, 종강하고 졸업하고 친구들도 간간히 만나며 여행 계획을 짰다. 무언가를 검색하고, 결제하고, 예약하고, 퍼즐을 맞추듯 하루하루 할 일로 가득한 하루들을 만드는 날들의 연속. 나는 아마 그때의 평화로움과 기대 가득한 일상을 참 좋아했지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순간 자체로도 긴 여행이며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짜는 시간이 아닌가. 먼 훗날에는 지금의 기억을 위안 삼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에게 불행들도, 행복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그들을 다 사랑할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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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말하자면 내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할 때 객관적인 상황 판단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보고 느끼는 감정들을 의심하는 데에서 자의식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불행하면 불행한 거다.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거다. 내가 봤을 때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말하고, 재밌으면 재밌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벤츠 운전석에 앉아서 클락션에 고개 박고 울 수도 있고 샤넬백을 던지면서 울 수도 있고 한강 뷰 아파트에서 와인 마시면서 울 수도 있는 거다. 심히 물질만능주의적 사고에서 기인한 발언이지만 예시를 들자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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