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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강주 Mar 17. 2023

베를린에서

<4>


*


2주간의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학원을 가려니 막상 짜증이 났다. 할 일이 없어 지루한 나날이 하루빨리 끝나고 학원에 가기만을 바랐던 과거의 내가 무색하게 말이지. 그 얼굴이 그 얼굴일 테고 3시간 동안 수업을 듣는 게 꽤나 고역이라는 게 뒤늦게 생각난 거다. 새로운 사람이 온다 한들 친해지는 데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친해졌다한들 너희들은 금방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테다. 저 먼 나라에서 온 내가 너네보다 더 오래 머무를 텐데 뭘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아니면 그냥 내가 지루한 인간이라서 그런 거겠지.

 

*

 

영어권 드라마를 보면 자주 나오는 표현이 있다. dead inside.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뭘 해도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안 되겠다. 죽어야겠다. 그만둬야겠다. 다 끝내야겠다. 이러면 안 되는데. 미치겠네! 하며 울먹인다. 목에서 뭔가 뱉어지지 않는 알약이 걸려있는 것만 같다. 의미가 없잖아, 나는 여기에서 혼자고 …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혼자이긴 싫을 뿐이다. 내 삶은 죽고 싶지 않다고 우는 나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나의 싸움이 끝이 나지 않기 때문에 유지된다. 한심하다.

 

*

 

어둡기만 한 베를린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수북이 쌓이는 눈은 아니었지만 – 밤새 내린 눈이 살짝 녹았다가 다시 얼려진 탓에 길이 미끄럽기도 했다. 어느 날은 버스가 20분이나 늦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그동안 친절하진 않아도 착하다고 생각했던 베를린의 사람들의 미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거장 정거장마다 내리는 사람들과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 사이의 크고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내게 Menschen! 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지랄이야. 화도 났지만 그것을 표현할 독일어 실력이 되지 않으니 눈썹만 씰룩이며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옆에 서있던 여자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아무 말 없이 피식하고 웃어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한국이 그리워졌다. 적어도 “내리고 탑시다.”라든지 “왜 저한테 지랄이세요, 씨발.. ” 정도는 작게 중얼거릴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피라미드에 누워있는 파라오의 자세로 한 시간 이상을 갇혀있어야 하는 한국의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도 생각났다. 다시, 베를린이 조금은 더 낫다.

 

*

 

혼자서 취하고 싶었다. 맥주 세 캔과 포도를 준비해 놓고 디즈니영화를 틀었다. 옆에서 마시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저녁 6시부터 그 큰 맥주 캔을 3개를 한 시간 반 만에 비웠다. 심지어 알라딘을 보면서 말이지. 누가 보면 코미디라고 했을 거다. 왜 그렇게까지 취했는지 모르겠다. 토를 하는 와중에도 아직은 멀쩡한 것 같은데, 나가서 버스 타고 몇 캔 더 사 올까? 하는 오기도 부렸다. 물론 그러지 못했지만. 토악질을 하고 자니까 한결 개운했다.

 

*

 

Living by myself

Paranoid as hell

There's nothing I can do

Yesterday's tomorrow

My dreams are never true

But somehow I keep on loving you

 

Emotions are attached

Cause something happened that

No one could help

I broke out of my shell just to find that

That I don't belong

I broke out of my shell just to find that

I'm living by myself

Paranoid as hell

There's nothing I can do

But somehow I keep on loving you

 

I keep on loving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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