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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강주 Apr 13. 2023

베를린에서

<7>



남자는 친구에게 중지와 검지를 벌려 혀를 집어넣는 제스처를 보인다. 불경하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클 만큼 다 컸는데, 어째서인지 계속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아니면 아예 자라지 않은 걸 깨달았거나.

 

*

 

며칠 전에는 지하철을 타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언니 네에서 잔 다음날, 케이크를 품에 안고 지하철을 탔다. 피곤하여 이어폰을 끼고 아무 생각이나 하며 앉아있었던 것 같다. 내가 탄 열차가 어느 역 플랫폼으로 들어가고, 내가 타고 있던 칸에는 아무도 내리거나 타지 않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독일의 지하철은 한국지하철과 달리 수동문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열차 바깥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여러 명의 남자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지하철 창문 높이 때문에 보이지 않았는데, 나중에 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었기에 그들이 웃으며 지켜보고 있던 게 여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오후 1시깨나 되는 시간에 어디서 그런 행색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로 눈이 풀려 있었다. 그리고 도망치려 했다. 급히 내가 타고 있던 지하철 쪽으로 달려와 버튼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너무 늦은 탓에 열리지 않았다. 창문 너머 여자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 뒤에 남자들의 웃음이 무서웠다. 열차는 달리기 시작했고 여자는 떠나는 지하철을 계속 두드렸다. 잔상이 잊히지 않는다.

 

*

 

어렸을 적의 기억 하나.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엄마와 외출을 했을 때 어떤 잘못을 했다. 엄마는 내가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매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그다음 날 때리겠다고 약속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다음 날이 오질 않기 바랐고, 당연히, 저녁 내내 엄마의 비위를 맞췄던 기억이 난다. 분명 엄마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가 나를 때리기로 한 것을 까먹길 바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은 아무도 없는 할머니네서 엄마와 단 둘이 잤다. 푸르른 어둠이 깔린 할머니네 큰방에서 엄마보다 작았던 내가 물었다. “엄마, 나 내일 진짜로 맞아?” 엄마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했다. 웃긴 기억이지. 그다음 날 맞았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 때문에 이 이야기가 더 웃기다. 하지만 이 일에서 배운 점 하나는, 맞아야 할 매는 언젠가 맞아야 한다는 엄마의 교훈이다.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맛없는 음식과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맛없는 음식 먼저 치우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고르라면 나쁜 소식 먼저 고르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매 맞을 짓은 하지 않고, 피할 수 있는 매도 자진해서 맞는 삶은 정말이지 재미없다.

 

*

 

결국 나는 견디지 못하고 떠나길 마음먹었다. 별 수 있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계속 마음 한 편 어딘가에서 “너는 역시 이류야. 이런 것 하나 이길 수 없다니, 네 아빠 같은 꼴을 보라고!”하는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고, 할 수만 있다면 그를 죽이고 싶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따위의 명언들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되새겨보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문장의 참뜻은, 피할 수 있는 데까지는 열심히 피해보라는 소리 아닌가. 나는 나를 지켜야 해, 그래서 이 순간을 피할 거야. 나는 겁쟁이인 채로 살 거야. 방해하지 마.

 

*

 

“너네 중국에서 왔지?”

 

쉬는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커피를 뽑아 마시며 또 허튼소리를 하고 웃고 있는데, 남자 둘이 다가와서 대뜸 말을 걸었다. 우리 셋은 짜기라도 한 듯 표정을 싹 굳히고 대답했다.

 

“아니? 우리 한국에서 왔는데.”

“아 그래? 너네 눈이 이렇게 생겼길래 –남자 한 명이 제 한쪽 눈을 찢어 보였다 – 중국에서 온 줄 알았어. 그럼 너네 중국어 하는 거야?”

 

갑자기 나타난 이 무뢰한들은 눈치마저 없는 것인지 개의치 않고 계속 물었다. 내 친구는 화가 나 벌떡 일어날 것처럼 몸을 들썩거렸고, 나는 이 무례함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욕지거리라도 뱉는 것이 이 미래가 안 보이는 사내들을 위한 일인지 고민했다.

 

“아니. 우리 한국어 써. 그리고 네가 방금 한 제스처 전형적인 인종차별인 거 알지?”

 

상대방의 행동이 우리에게 모욕적임을 표현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우리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는지 신이 나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묻는 것이었다.

 

“아, 그럼 너네 중국글자 사용하지 않아?”

 

남자가 무식함이 바닥을 치는 질문을 했을 때, 내 친구들과 나는 정말 화가 나서 뭐 이딴 새끼들이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계속 응시했다. 내가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우리 한국에서 왔고, 한국사람이고, 한국어 쓰고, 한국 글자 따로 있다고.”

 

동양 여자는 상냥하고 친절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자 애들 셋 표정이 살의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니 남자들은 무안한 지 머쓱하게 웃고는 곧 가버렸다. 타인 가득한 길거리도, 취객이 난동하는 지하철도 아니고 타인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러 온 학원에서 이런 인종차별을 겪을 줄은 몰랐다. 짧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는데도, 얻어맞은 것 마냥 피곤함이 엄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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