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은 비 온 뒤라 흙이 눅눅했고, 솔잎 사이로 김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낮은 구름이 능선을 스치며 흘러가던 오후였다.
도윤은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숨을 고르며 휴대폰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손이 허공에서 한 번 더 머뭇거렸다. 무엇을 찾으려다 잊은 사람처럼, 표정이 어정쩡했다.
도윤은 요즘 자주 그런 얼굴이 되었다.
뭔가를 분명 챙겼다는 확신과, 그다음 장면이 통째로 빠져 있는 느낌 사이에서 멈춰 서는 얼굴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나무랄 말들을 속으로 정리하다가, 한숨을 삼켰다.
그때, 바위 위에서 자갈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자 산신령이 안개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수염에는 솔잎 몇 개가 엉겨 붙어 있었다.
옷자락은 바람에 느슨하게 흔들렸고, 눈은 묘하게 웃고 있었다.
“거 얼굴이 꼭 주머니에 구멍 난 사람 얼굴이네. 아무리 만져도 있어야 할 게 없을 때 그 표정이 딱 저거일세.”
도윤은 놀라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산신령님… 여기 계실 줄은 몰랐어요. 그냥… 머리 좀 식히러 왔어요.”
산신령은 바위에 털썩 앉으며 지팡이로 땅을 툭툭 두드렸다.
“머리는 식히러 오는데, 마음은 계속 열 올리고 있구나. 도윤아, 요즘 뭘 그렇게 잃어버리고 다니나?”
도윤은 입술을 꾹 눌렀다가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별거 아니에요. 값도 얼마 안 되는 것들이고요. 근데… 자꾸 사라져요. 분명 내가 챙겼는데, 분명 거기 있었는데.”
산신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자, 잎들이 한 방향으로 쏠렸다가 갑자기 엉키듯 흔들렸다.
“저 바람 좀 보시게. 그냥 쭉 가면 좋겠는데, 저기 튀어나온 바위 때문에 한 번 뒤틀리지. 그러면 그 뒤쪽은 더 어지러워져.”
도윤은 바람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래도 바람은 사라지진 않잖아요.”
“맞네. 안 사라지지. 다만 모양을 바꾸지.”
산신령은 손으로 공중에 원을 그렸다.
“도윤아, 네가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들, 그게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면 네 흐름에서 잠깐 밀려난 걸까?”
도윤은 대답 대신 돌멩이를 발로 찼다. 돌은 몇 번 튀다가 낙엽 더미에 묻혔다.
“저는 제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요. 정리해 둔 그 위치, 그 각도. 거기 없으면… 하루 종일 신경 쓰여요.”
산신령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자네 마음이 꼭 지하철 출근 시간표 같구나. 한 칸만 어긋나도 다 무너진다고 생각하지.”
그는 지팡이로 바위 옆 금속 난간을 가볍게 쳤다. 찬 기운이 올라오며 금속이 미세하게 울렸다.
“이 쇠붙이 말이네. 밤에 차가워졌다가 낮에 데워지면 아주 조금 늘어났다 줄어들지. 눈에 안 보여도 매번 그러네. 그걸 억지로 고정해 두면 어떻게 되겠나?”
“휘어지겠죠.”
“부러지지.”
산신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아, 네 하루도 그렇네. 모든 걸 제자리에 꽉 묶어 두면, 못 견디는 건 물건이 아니라 자네일세.”
도윤은 그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슴 어딘가가 콕 찔렸다.
“그래도요. 내가 멀쩡하다는 증거가 필요해요. 내가 내 삶을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
산신령은 잠시 말이 없었다.
대신 손바닥을 땅에 대고 흙을 쓸어 올렸다. 흙 속에서 작은 개미들이 갈라져 나왔다가 다시 모였다.
“개미들도 말이네, 먹이를 한 마리가 독차지하지 않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흘려두지. 그래야 길이 남거든.”
그는 도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네가 잃어버린 건 물건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를 믿던 감각일세. 그래서 자꾸 손에 잡히는 걸로 확인하려는 거지.”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산 아래에서 차 소리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세상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해보시게.”
산신령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하루에 하나만 일부러 느슨하게 둬. 꼭 거기 있지 않아도 되는 물건 하나.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 아무 일 없었다는 걸 확인하는 거네.”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그게… 연습이 될까요?”
“바람도 조금씩 길을 찾아가고, 모래언덕도 하루아침에 움직이지 않아.”
산신령은 천천히 일어섰다.
“도윤아, 네가 일어서는 속도는 네가 정하면 되네. 다만, 모든 걸 움켜쥔 채로는 못 일어서지.”
안개가 다시 짙어지며 산신령의 모습이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솔잎 떨어지는 소리와, 묘하게 가벼워진 공기였다.
도윤은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배낭을 멨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손이 멈췄다. 대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