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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Nov 08. 2022

"이 병은 고쳐지지 않는 병입니다"

이제는 덜 과민하게 살고 있습니다 -1화


20 무렵, 인물의 생애를 다룬 책을 읽다가 쉽사리 동의할  없는 구절을 만났다. 저자는 추측하건대, 인물이 앓은 지병이 그의 인격형성과 살아온 행보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추측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성격은 타고난다는데 병이 인격형성에까지 영향을 줬을라고. 병을 앓은 게 인생에 영향을 줘봐야 얼마나 줬을까. 병은 병이고 인생은 인생. 둘은 별개지.


나는 스스로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30대를 지나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내 삶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깨달았다기보다 이제는 인정하고 싶어 졌달까.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본 나는 이제 그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병은 인생에 영향을 주다 못해 삶을 바꿔놓을 수 있어요. 그도 영향을 받았겠군요."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에 관심이 많은 건 내 나름의 절실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건 다름 아니라 수십 년째 앓고 있는 과민성대장증후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성격, 직업 선택, 그 외 여러 가지 면에 영향을 끼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몇 달 다니다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 주된 이유도 이것이었다. 학창 시절과 대학시절에도 같은 증상으로 힘들었지만 학교니까 어떻게든 다녔고 졸업을 했다.


그러나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장은 달랐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고, 생각지 않은 문제가 터지고, 한 가지를 하다가도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화장실 가기 어려운 날도 생긴다. 나는 일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긴장을 하면 증상이 심해졌는데, 반대로 증상 때문에 긴장이 되기도 했다. 둘은 쌍방으로 영향을 미쳤다.


속이 불편하다고 자주 자리를 비우면 일을 제대로 안 한다고 오해를 사는 곳. 학생 때처럼 규칙적으로 쉬는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강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 스트레이트 풀 근무 조건. 저질 체력의 소유자도 야근에 예외가 없는 곳.


병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너무나 오랜 기간 '익숙해져 버린' 나의 일부라서 훗날 사회생활에 어떤 어려움을 초래할지 미리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것이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나의 발목을 붙잡게 될 줄은 몰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엄마께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를 그만둔 배경에 이런 이유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자 엄마는 수소문을 했다. 그리고 건너 건너 지인이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하다가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지금은 그런대로 잘 지낸다는 걸 알게 됐다. 의사가 속한 곳은 어느 대학병원이었다. 한가닥 희망을 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진료예약을 했다. 그렇게 낯선 동네로 먼 걸음 해서 찾아간 날 의사에게 내가 들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이 병은 고쳐지지 않는 병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 병은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방법도 없다, 다만 필요할 때 증상을 줄여주는 약이 있기는 하다며 처방해주었다. 약국에서 처방받은 두툼한 약봉지에는 각양각색의 알약이 들어있었다. 한입에 털어 넣기 힘든 양이었다. 이런 약을 도대체 언제까지 먹으며 살아야 하지? 아직 나는 젊은데 벌써부터 약을 달고 산다고?


먹자니 거부감이 들고 서러웠지만 효과가 있는지는 확인해야겠기에 몇 차례 약을 먹어보았다. 그런데 웬걸. 내가 체감하기에는 이렇다 할 효과가 느껴지지 않았다.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먹어야 하는 양이 적지도 않다. 장기적으로 복용하다 보면 내성이 생겨 약의 강도를 점차 높여야 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진료를 받는 것도 아닌데 약을 타려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한다니.


나는 약을 먹기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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