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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Nov 11. 2022

과민성대장증후군과 함께 살아온 인생

이제는 덜 과민하게 살고 있습니다-2화

내가 겪는 주된 증상은 이랬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식사를 하고 나면 얼마 안 있어 조금씩 속이 불편해졌다. 본인이 여기에 있다며 장이 어필을 시작한다. 서서히 가스가 차고 어느 순간에는 배가 빵빵해지는데 이때부터는 온 신경이 장으로 쏠린다. 한두 시간 후 괜찮아지는 때도 있지만 심한 날에는 이 상태가 몇 시간이고 지속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증상이었다.


심할 경우 머리도 아픈데 일반적인 두통과 조금 다르다. 안개 낀 듯 머리가 띵하고 늘 하던 일도 평상시의 두 배로 에너지가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집에 있으면 쉴 수 있으니 그나마 낫지만 수업을 듣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는 힘듦이 2배, 3배가 된다. 딱히 방법은 없고 통증과 불편함을 온전히 견디다 보면 식은땀이 났다. 긍정의 힘도 몸이 따라줄 때라야 발휘되는 법이다. 몸 상태가 최악인데 표정이 좋을 리 없다. 나는 고통을 속으로 참아가며 때로 화가 난 사람처럼 표정이 굳었다.


증상이 심해서 괴로워 미치겠는데 버텨야 하는 상황일 때면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없애고 싶다...


나는 배 속에 자리 잡은 길고 긴 장을 삽으로 퍼내어 밖으로 버리는 상상을 했다.


장기는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내 소화기관은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이쯤 되면 주인인 내게 고통을 주려고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 어쩌다 이토록 예민하고 예민한 장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병이라고 하긴 그렇고 타고나길 이렇게 타고난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울분이 터질 노릇이었다. 이 정도면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언뜻언뜻 하기는 했지만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화창한 이십  시절 나는 활력이 없었다. 기억하기로 에너지가 넘쳤던 날이 별로 없다. 추억을 만들고 경험을 쌓기 좋은 시기에 나의 행동반경은 지극히 좁았다. 여기에는 예민한 장이 한몫을 했다. 증상이 심한 날은 기운이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있을 때라야 충전이 되는 성향인데 점점  사람을 만나는  꺼려졌다. 대학시절 대부분을 학교와 집을 오고 갔던 기억이 난다. 방학 때는 거의 집에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과민한 장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걸 피했다면, 졸업을 하고 나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이따금씩 친구 혹은 동기가 좋은 곳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첫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한 후로 나는 재취업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른 곳에 들어간다한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놀면서 부모님께 돈을 받기에는 눈치가 보여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다. 그마저도 쉽고 스트레스가 적어 보이는 일을 골라서 했다. 긴장도가 낮은 일이라야만 장이 자극을 적게 받을 것이고, 일이 쉬워야만 증상이 발생하더라도 퇴근시간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쉬운 일을 찾아서 한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겨우겨우 버티는 수준이었다.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적도 있다. 용돈이 떨어지면 집에 있고 다시 일을 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한창 놀러 다니고 어학연수도 가고 취미생활도 하고 연애하며 활동적일 20대에 나는 백수로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제대로 된 취업도, 여행도, 어학연수도, 취미생활도, 연애도 하지 않았다. 취업? 언젠가는 하겠지. 여행? 좋아하지 않아. 어학연수? 돈도 없고 가기도 무서워. 취미? 돈이 들잖아. 연애? 남자에 관심 없어. 실은 내 생활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들을 스스로 차단시키는 사이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갔다.


남들 하는 취업도 안 하고, 그렇다고 취업준비에 열정을 바치는 것도 아니고, 신나게 노는 것도 아니고, 알바를 꾸준히 하는 것도 아니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 나를 보며 부모님은 답답해했다. 뭐라도 하라고 하셨지만 당시의 나는 의욕도 욕심도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돈이 부족했다. 근근이 하는 아르바이트로 무슨 여유를 부리겠는가. 갖고 싶은 것이나 가보고 싶은 곳,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시도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니 그런 마음 자체를 접었다. 일찍부터 단념하는 데 익숙했다.

돈이 들겠다 싶으면 방법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곧장 돌아섰다. 집 밖을 나가면 돈이 드니까 집이 편안했고, 버는 돈이 적다 보니 먹을 것을 살 때도 가격이 우선됐다. 과자와 같은 정크푸드에 일상적으로 손이 갔다. 사람을 만나는 빈도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연애는 말할 것도 없다. 아예 생각을 안 했다.


나는 예민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픈 곳 없는 가족이 부러웠고 친구들이 부러웠다. 건강하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이 편안한 삶은 어떤 느낌일까? 그 일상은 얼마나 에너지 넘칠까? 궁금했다. 나도 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의사가 고치지 못한다고 했던 나의 병에 차도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이야기를 글로 적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인 삶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라면 아픈 상처를 헤집는 것밖에 더 되었을까.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증상이 조금씩 완화되면서 삶이 바뀌어갔고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인생을 한 번 돌아보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은 공간을 정리하듯 지나온 시간을 한 번 정리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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