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
이 둘을 이용할 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안다. 술은 조금 하고 담배는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먹는 것에 한해서는 너그러웠다. 온전한 과거형은 아니라서 요즘도 그 생각을 매일 0.1그램씩 덜어내는 중이다. 사람이 힘들다고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는 건 나쁘다 혹은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하길래 안 했더랬다.
그런데 음식에 대해서는? 주의하라고 들은 것이라고는 배탈이나 충치 정도였다. 먹고 배탈 안 나고 치아 안 썩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할밖에. 여기에 더해, 먹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는 문화가 관대함에 접시를 더 보탰다. 요즘이야 건강에 대한 의식도 높고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는 분위기여서 이런 말이 덜 들리지만,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말이 있는 것도 그렇고 복스럽게 먹으면 좋아하며 반대로 먹으면 깨작깨작 거린다는 말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보편적 무지함’으로 나는 뭔가에 꽂혀서 먹는 것을 ‘좀 그래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탄수화물도 습관적이 되면 중독이 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가면 아무리 굳센 의지로 끊으려고 해도 끊어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좋겠지만,
식품, 정확히는 가공된 탄수화물이 술이나 담배처럼 지나치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책을 찾아보고 알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라 여긴다.
알고 난 후에도 바로 끊지 못했다.
평소 위험을 피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인 내가 음식을 먹을 때는 나답지 않게 위험한 행동을 서슴없이 했다는 게 참 스스로도 놀라운 일인데... 그래서 중독이라는 거다.
과거에 내가 관대했던 탄수화물.
이제 나는 이걸 무서워한다.
아니, 조심한다고 해두자.
절제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또 연습하고 있으니까.
어느 날에는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와야 한다.
탄수화물이 가져올 리스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만큼, 내 안에 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서운 것이 있었다.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못하고 자책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나는 솔로] 12기 출연자 영수에서 과거 내 모습이 보였다. 저러면 정말 힘들 텐데... 안타까웠다.
나는 10대 20대 때 무기력했고 생기도 빛깔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인식하고 한 해 한 해 내 빛깔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이 더 나다운 사람이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디테일하게 알아갈수록 음식에 대한 의존도 디테일한 방식으로 줄어든다. 여전히 나는 탄수화물에 끌리지만 그것은 이제 나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다. 이제 내가 이끌리는 것의 가짓수는 곱절로 더 많다.
‘주역’에서는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에 인생이 순조롭고 술술 풀린다고 한다. 요즘 그런 느낌이 조금씩 든다. 인생이 조금씩 순조로워지는 느낌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참 많이 힘들었기에 이 짧은 문장에 담긴 의미가 나에게는 울림이 깊다.
정말 피하는 게 좋은 위험과, 위험해 보이더라도 피하지 말고 끌어안아야 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맑은 판단력과 용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