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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정원 Jan 09. 2019

북극곰보다 내가 우선

몇년 전 영화 <월-E>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인류가 지구에서 멸종이 되어도, 지구를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놓고 다른 행성으로 달아나도 그러거나 말거나 지구는 지구대로 존재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문구는 정말이지 인간중심적이다.

예전엔 공감을 했지만 이제는 이런 호소섞인 문구가 정말 불편하다.

몇년 전만 해도 나는 나보다 다른 존재를 걱정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걱정하던 건,

그랬다. 북극곰이었다.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한해 한해 강, 바다, 공기, 계절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나도 변했다.
특히 지난 여름을 계기로 급격하게 "북극곰보다 내가 걱정이다"

북극곰도 힘들겠지
그런데
이제 나도 힘들다

이게 다 지구를 위해서?
아니다. 난 그렇게 희생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물병을 가지고 다니고 비닐을 받지 않는 건,

마셔도 되는 공기, 마셔도 되는 물, 건강을 유지하는데 무리가 없는 적당한 기후를 앞으로도 누리고 싶은 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이것도 지구를 위해서?
아니다. 그런 거창한 일이라면 얼마 안 가 그만 뒀을 것 같다.

위험한 원자력발전소가 꼴보기 싫고

내가 낸 세금이 쓸데없이 물 정화에 허비되는 게 싫어서 플러그를 뽑고 수도꼭지를 잠근다.
그러니까 나한테 이득이니까 한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봤자...

박지구씨? 최지구씨? 성도 모르는 지구씨는 그저 남일 뿐!

지구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자는 권유가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 당신을 위한 게 아니란 건 저도 알아요.
= 바쁘신 건 알지만 그래도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 지구를 도와주면 정말 고맙지만 못 하겠다면 어쩔 수 없죠

안 한다고 당장 무슨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바쁜 일상에 불편함을 감수할 사람은 별로 없다.
거창하고 상징적인 표현이 오히려 환경문제를 남의 일처럼 느끼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20년 후에 내가 먹을 식량이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을까봐 걱정이 된다.
아니, 당장 이번 여름에 얼마나 더울지부터가 걱정이다. 지난 폭염 때 내가 지구를 생각할 겨를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