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은 어디로 사라졌나
수현이가 결혼한다.
각자 자리를 잡고 바쁘게 살다 보니 우리는 졸업하고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는 사이였다. 그런 사이가 오래간만에 수현이의 결혼 소식 덕분에
다 같이 모여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는 거였다. 십 년 전의 우리는 치즈케익과 홍차를 파는 예쁜 찻집 가는 걸 좋아했으니, 오늘 이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취향마저 바꾸나 보다.
학교 앞에서 다니던 식당과 카페들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학교 앞 '사라진 식당' 리스트를 최신화 하며 씁쓸해한다. 그러다, 모두가 탄식을 내뱉은 건 정문 앞, 신호를 건너 건물을 돌아가면 나오는 허름한 백반집 '배꼽시계'가 등장했을 때다.
"야, 배꼽시계도 없어진 거 알아?"
"아...! 거기 잡채볶음밥 진짜 맛있었는데."
"그 위에 계란 노른자 터뜨려 먹으면 대박이야."
"와 거기 언니들이랑 진짜 많이 갔지."
수현이는 내가 속한 '패키지'와 다른, '언니들' 그룹에 속한 친구였다.
우리는 함께 입학했어도, 각자의 사정에 번갈아 휴학과 복학을 하며 '따로 또 같이' 캠퍼스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언니들'과 우리는 가까워졌다. 말 그대로 같은 학번이지만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었다. 그 그룹에 동갑내기 수현이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그들을 '언니들'이라고 불렀다.
점심 시간에 경영관 앞 '솔밭'에 가면 언니들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가기 싫으면 거기로 가면 됐다. 우리는 매일 거기 앉아서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를 했고, 아무 걱정 없이 웃었다. 언니들은 소탈하긴 해도 학생식당 가는 건 싫어했으니 그런 부분에서 어쩌면 잘 통했다. '배꼽시계'는 그런 우리가 함께 점심을 먹으러 자주 가던 곳이었고, 그 집의 메인 메뉴는 단연 잡채볶음밥이었다.
잡채볶음밥이라는 음식이 한식에서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는 독자적인 메뉴인지 잘 모르겠다.
중국집 잡채덮밥도 아니고, 아마 어쩌다 보니 탄생한 '짜계치' 같은 근본없는 메뉴들 중 하나에 속하지 않겠나 싶다.
잡채는 잡채대로, 볶음밥은 볶음밥대로 재료를 다양하게, 손질을 잘게 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래서인지 두 가지 다 집에서는 잘 안 해 먹는다. 그런 귀찮은 음식 두 가지를 백반집의 '대량생산 철판 신공'으로 합쳐서 탄생시킨 게 잡채볶음밥이었다. 참기름 꼬순내와 살짝 눌어붙은 잡채 당면은 여대생들의 입맛에 완벽하게 맞았다. 볶아내며 후추도 듬뿍, 위에는 반숙 계란후라이 (완숙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했다.) 와 김까지 얹어 주니 배고픈 점심때는 그 냄새에 위장이 입 밖으로 마중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집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살면서 잡채볶음밥은 다시는 먹어볼 수 없을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드는 거였다.
"배꼽시계 갈래?"
볕 좋은 점심때, 누군가가 명랑하게 외친 그 목소리는 용돈, 과제 그런 것 말고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던 때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그 유쾌한 목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계란후라이가 올라간 잡채볶음밥.
'여대생 나'를 떠올리면 머릿 속에서 금새 꺼내오는 장면이지만, 이마저도 배꼽시계가 사라졌듯 언젠가는 잊혀질 것이다.
아, 잡채볶음밥 사진 한 장 찍어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