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니언수프 Aug 24. 2019

8월, 영혼을 위로하는 카레라이스

뜨거운 열기를 후후 식혀가며


나는 카레를 좋아한다. 카레가 왜 좋은지, 카레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맛있다. 카레만 먹어도 맛있고, 옆에 구운 야채가 있든 돈까스가 있든 깍둑 썰은 돼지고기가 들었든 다 맛있다. 인도식, 일본식, 태국식, 다 좋아한다. 아, 다른 것보다 한국식 오뚜기 3분 카레는 좀 덜 좋아하긴 한다.


대학 시절에 좋아했던 신촌의 생선구이집은 카레를 살짝 발라 구워 묘한 맛이 나서 좋았다. 마트에서 소시지 묶음 세트를 팔면 구워다 제일 먼저 집어 먹는 것도 카레맛 소시지다. 집에서 튀김을 할 때도, 튀김가루에 카레 가루를 살짝 섞으면 풍미가 생겨난다. 아무래도 어디에 들어가든 카레는 달고 짠 것을 벗어난 독특한 맛을 감출 수가 없다.


카레는 의외로 만들기도 쉽다. 레토르트 카레는 잘 안 먹으니 고형분이나 가루 형태의 카레로 설명하면, 당근, 감자, 양파 등을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넣고 기름과 후추에 함께 볶는다. 제일 느리게 익는 당근을 기준으로 채소들이 익어가는 것 같으면 물을 자작하게 붓는다. 이 채소들이 노릇노릇 냄새를 풍기는 육수가 되기 시작하면 고기를 같이 넣어 익혀준다. 고기를 같이 볶고 물을 부었어야 하는지 조금 헷갈린다. 아무튼 재료들이 모두 익어가면 쪼개 놓은 고형 카레나 가루 카레를 부어서 골고루 저어 주면 된다. 당근이 푹 익을 때까지, 고기가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그리고 바닥이 눌어붙지 않게 인내심 있게 졸이면 된다.


카레 만들기 3단계!


오늘은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집 근처의 쌀디저트 카페에 다녀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해 본다. 메뉴는 카레라이스, 재료는 모두 준비되어 있다.


오랜만에 요리하는 저녁이다. '정말, 정말로 회사생활의 위기다.' 싶은 생각을 내내 할 만큼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던 지난 한 달이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오늘의 여유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다시 먹고 사는 일의 최전선으로 내달리며 스스로를 신경쓰지 못할 까봐서.


사실은 그 힘든 와중에도 시간이 나면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었다.

'요즘 힘들었으니까, 네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 울며 보채는 어린아이를 토닥이듯, 나 자신을 위로했다. 어느 날은 타피오카 든 아이스 밀크티를 사 마셨다. 제일 좋아하는 새우를 굽고 디저트로는 꿀을 뿌린 요거트와 후라이팬에 지진 쑥개떡을 먹었다. 딱딱한 복숭아를 깎아 다 먹어치우기도 하고 돼지갈비를 잔뜩 사서 김치찜을 해 먹기도 했다. 그게 바쁜 나날들 중에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이었다.


어디서 본 글이었는데 삶의 시기에도 계절이 있다고 했다.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과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라듯 사람도 당장 얻는 것은 없고 노력만 많이 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 같다. 올해 나의 여름, 8월은 정말로 여름다웠다. 바깥보다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머리는 열이 많이 났는지 탈모가 의심될 만큼 머리카락이 빠졌다. 뜨거운 날씨가 사그라들면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조금 식은 상태가 와서야 한 달을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 여름이 지나간 것 같은 건 내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그건 지나봐야 알겠다.


사 먹는 카레라이스와는 토핑 양 비교를 거부한다


카레라이스는 맛없기가 더 어렵다. 게다가 집에서 만드는 카레는 토핑을 혜자롭게 넣을 수 있다.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카레라이스로 한 끼 잘 돌보았다. 올해 여름은 몸보다 마음이 더 뜨겁고 힘들었지만, 분명한 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이전글 <굿피플>이 내게 남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