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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언수프 Oct 26. 2019

10월, 콜포비아에게 배달 어플이란

세상 살기 편해졌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전화하는 일을 싫어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한 시간, 두 시간씩 통화하며 이야기하고 웃는 일은 없었다. 친구와 밤늦게까지 다른 친구 이야기, 연애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꺄르르 웃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다. 그렇게 비기 알이 모자랄 정도로 문자 주고받는 건 좋아했으면서 통화하는 건 싫었다. 내가 먼저 걸지 않으니 친구들도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손에 꼽았다. 장시간 통화가 가능한 건 가족과 연인 뿐이다. 내가 버벅대든 말이 뚝뚝 끊기든 다 이해해줄 사람만.


전화는 지금도 싫다. 내게는 업무 상 부득이하게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많다. 콜포비아에게 하루에도 전화가 열 통 이상 씩 매일같이 오면 업무의 맥이 끊기고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바로 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디테일한 상황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이제는 거의 의도적으로 모르는 번호는 전화를 받지 않게 됐다. 내가 사무실에서 제일 많이 투덜대는 것이 "왜 전화로 일을 하려고 해?" 하는 거다. 직업 윤리, 아니면 사람에 대한 예의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나를 질책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업무 중에 걸려오는 전화를 모두 받아 응대하다가는 내가 딱 미칠 거 같았다고 변명해 본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많은 것에 참 서툴었는데, 그 중에 정말 곤란했던 일은 음식을 배달 시키러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그 때는 왜 그리 중국집 짜장면도 먹고 싶고, 피자도 먹고 싶었는지 몰라도 전화를 직접 걸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만큼이었나 보다. 워낙에 숫기 없고 조용한 아이여서 그랬는지 부모님이 일부러 미션을 준 것 같은 느낌이 이제서야 든다. 중국집에 전화를 거는 일은 하나의 과제였다. 짜장면 2개, 짬뽕 하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버벅댈까 봐, 우리 집 주소가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을 까봐 겁났다. 메모지에 메뉴를 적어 놓고 전화를 걸어야만 안심이 됐다. 나중에는 카드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현금으로 계산할 지, 카드로 계산할 지도 기억해 두고 꼭 언급해야 하는 시대로 변모되었다.


어제는 월급날이었다. 그렇게 직장인의 삶을 지겨워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월급날이 몇 번째 돌아오는지 모른다. 월급날의 의식 같은 걸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괜스레 편하고 맛있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싶은 기분이 났다. 불금이기도 하고.


부담을 한층 덜어내고 휴대폰에 있는 '배달의 민족' 아이콘을 클릭해 본다. 집 주소는 이미 저장되어 있다. 치킨으로 할까, 피자로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쌀도우를 쓴다는 피자집에서 메뉴를 고른다. 메뉴 리스트는 보기 쉽게 신제품, 인기제품, 사이즈 별로 금액도 보여준다. 일회용 젓가락과 종이컵이 필요한 지, 그런 것도 미리 언질을 줄 수가 있다. 세상에 결제도 미리 해 놓고 대략 언제쯤 도착할 지도 알 수 있다.


손가락 클릭 몇 번으로 맛있는 피자를 배달받아 불금의 저녁식사를 마쳤다. 어릴 때 중국집에 전화는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그 때보다는 자연스럽게 메뉴와 주소, 구체적인 요청 사항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그 사이에 혹시 내가 잃어버린 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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