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매뉴얼 없이 살아온 사람

by 호하은
우울증 약은 나를 지옥에서 꺼내주지만, 멋대로 구는 라켓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어느 쪽이 더 고차원적인지는 자명하다.

고등학생 때 감기에 걸릴 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얼른 나가서 운동장 열 바퀴를 뛰고 오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한겨울에 운동장을 뛰라니, 감기 걸린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빌빌거릴 때마다 선생님은 자기 말을 안 믿냐며 효과 직방이라고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을 더 믿었고, 그 신뢰는 대체로 근거가 없었다.


엄마와 나는 둘 다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웬만하면 집에 누워 있는 걸 좋아했고, 땀이 나는 신체 활동은 애초에 삶의 선택지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운동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볼 기회조차 없었으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내 몸과 소통하지 않고 살아왔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배운 수영조차 물놀이에 가까웠지, 땀을 흘리는 일은 아니었다. 나이가 한참 차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서른이 되던 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때까지 의사 선생님들은 늘 비슷한 말을 했다. 주기적으로 운동을 해보라는 권유였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나는 여전히 그것을 삶의 중심에 둘 수 없었다. 다만 막연히,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가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 기념으로 테니스를 시작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요동이 적은 정신적 시기가 열렸다.


황금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변화는 좌절로 시작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고, 쉽게 무너지고, 거의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계속해서 성실하게 인정해야 했다. 머리로 안다고 해서 몸이 따라주는 일은 거의 없었고, 그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첫날, 못해도 평균은 할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공 두 개 만에 사라졌다.


테니스가 나에게 준 가장 결정적인 선물은 건강한 몸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이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시간.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하는 순간에는 의미나 이유를 붙일 여유가 없다. 몇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나면 머리통을 통째로 비운 것 같은 느낌이 남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동안 몰두해 온 것이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을 설명하려는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도 유명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나 역시 이른 나이에 읽었고, 한동안은 내 삶의 의미를 열심히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상태가 깊이 가라앉아 있을 때,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종종 또 다른 자책으로 돌아왔다. 나의 태도가 다시 문제로 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에 빠진 친구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할 때면, 나는 조심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의미 강박’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을 내가 소유한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 그 자체로 보았다. 그 말이 이해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빠져 살아왔고, 그 생각이 언젠가는 나를 구원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단순히 나는 생각을 멈출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똑똑한 척을 해놓고 말이다.


우울증 약은 나를 지옥에서 꺼내주지만, 멋대로 구는 내 테니스 라켓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어느 쪽이 더 고차원적인지는 자명하다. 컨디션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면 순서를 바꿔야 한다. 설명은 미루고, 몸을 먼저 쓰기.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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