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독립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나는 개인주의적 삶을 선호하지만, 스스로를 독립적인 사람이라 믿지는 않는다.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믿음이 때로는 우리를 우울로 밀어 넣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증이 심해질 때 대개 ‘잠수’를 탔다. 최소한의 만남과 연락—거의 무에 수렴하는 수준—을 주도적으로, 치밀하다 말할 수 있을 만큼 계획하고 실행했다. 그래서 갑자기 내가 사라진 상황에 당황하는 가까운 이들이 주기적으로 생겨났다. 나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사적인 감정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늘 미안했지만, 동시에 억울했다.
시간이 지나 변명을 하기도 했고, 솔직하게 당시의 상황을 털어놓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서운함이 큰 사람과는 결국 관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반대로, 별말 없이 나를 받아준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소중해졌다. 우울을 경험한 사람에게 이런 관계는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 존재를 붙들어주는 기반에 가깝다.
잠수는 완전히 의지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에 가깝다. 그래서 빠르고 매몰차며 주저함이 없다. 우울감이 덜할 때는 사회적 관계를 그렇게 쉽게 단절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경고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한동안 내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취약함은 극복해야 할 결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강해져야 한다고, 단단해져야 한다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취약성은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인간의 구조에 가깝다는 것을.
완전한 자율성은 존재하지 않고, 완전한 통제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취약하지 않은 척하는 기술을 연마한다. 기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성을 용기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연결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 말을 한동안 납득하지 못했다. 취약해지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순간은 완벽했을 때가 아니라,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냈을 때였다.
취약성을 인정하는 일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히 아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야 도움을 청하는 행위가 비굴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정서적 고립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안을 증폭시킨다. 스스로 만든 고립은 잠시 통제감을 주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진짜 독립적인 사람은 고립과는 거리가 멀다. 안정적인 의존 관계가 구축되어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관계 안에서 흔들릴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성숙의 모습이다. 그래서 가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거나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때면, 나는 조금 서운해진다. 우리는, 나를 포함해 누구든, 언제나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밥은 잘 먹는다.
우리는 종종 개인주의적인 삶과 독립적인 삶을 혼동한다. 혼자 있고 싶다는 기질적 성향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로 오해한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관계를 끊어내면서도 그것을 자율성의 표현이라 여겼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어떤 이는 말할지도 모른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웬만한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돈은 많은 기능을 대신해 준다. 하지만 돈으로 매개된 도움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도움은 질적으로 다르다. 거래는 문제를 해결하지만, 신뢰는 존재를 지탱한다. 같은 도움처럼 보여도 그 작동 방식은 전혀 다르다.
도움을 청하는 일이 여전히 서툰 나지만, 이것이 내가 건강한 삶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임은 분명히 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때 주저함이 없는 이유도 같다. 도움을 주는 행위는 상대를 지지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 역시 관계 안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취약함을 드러냈을 때 관계가 무너진다면, 그 관계는 원래 단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숨겨서 연결을 유지하지 않기로 했다. 또 완전히 독립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못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