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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재 Dec 25. 2023

집순이의 크리스마스

나 홀로 집에 볼 시간이 없어요


나는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자.

광고 없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플레이 해 놓고 이때 아니면 쓰기 어려운 촌스러운 빨강과 초록색 물감을 세팅한다. 평소엔 조색을 해서 채도를 낮춰 나름 차분해 보이게 채색을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예외다. 1년 중 빨강과 초록이 가장 예뻐 보이는 날. 크리스마스를 위한 컬러링을 시작한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20대에는 이런 기념일에 집에 있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길거리를 쏘다니며 놀았다. 하지만 이젠 '아... 옛날이여~~' 노래 속 가사처럼 멀어진 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나이에 맞게 어울리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며 위로를 건네 본다. 사실 돌아다닐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웃픈 현실이 팩트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20대엔 그 나이에 맞게 에너지 넘치고 매력적인 크리스마스를 즐겼고, 30대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보냈다. 40대엔 약간의 세련된 척하는 취미생활 하고, 50대엔 우아하게 와인과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를 상상해 본다.




40대 후반의 나는 잔잔한 캐럴송과 함께 예쁜 그림을 그리며 나 홀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중이다. 지금의 이 안온함이 좋다. 여행보다는 집을 좋아하는 극 내향형에 에코이스트인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보내는 잠깐의 여유가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얻는 에너지도 좋지만 혼자 고요히 충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 유형이다. 처음엔 이런 모습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 느껴져 자기혐오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업무의 한 부분처럼 스케줄로 잡는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취미가 업이 되었지만 여전히 쓰고 그리는 일이 좋다. 폰을 집중모드로 변경해 뒤집어 놓고 워치도 풀어 놓는다.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하는 일련의 의식 같은 과정이다. 준비하다 지쳐서 하기 싫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마음의 준비라고 생각한다. 과정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분들의 특징은 결과물에 무게를 더 많이 두는 경우가 많다. 그저 뚝딱!! 번잡스러운 과정 스킵하고 예쁜 결과물만 손에 쥐고 싶은 사람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잠재된 인격이 잠시 등장한다. 과정이 번거로우면 그저 아트박스에서 신상으로 구입하면 된다고... 눈은 웃고 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은 예쁘지 않다. (가끔 불친절한 인성이 고개를 든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과정을 즐기는 일이다. 하루종일 캐럴을 들으며 알록달록 예쁜 그림들을 완성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집순이에게는 쉼이다. 나 홀로 집에 영화를 보며 나른하게 누워 있을 시간도 없을 만큼 하루가 짧다. 물론 아이들을 다 키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30대의 나는 초등 아들 딸을 데리고 나름 좋은 엄마 코스프레에 빠져 살았다. 엄마표 핸드메이드 케이크도 함께 만들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직접 그리고 오려 붙여가며 드라마 속 멋진 엄마 역할에 충실했다. 그때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지금처럼 커뮤니티나 sns의 발달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다.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림과 육아를 직장 생활하듯 열심히 했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그 모든 시간들에 대한 보상처럼 이제는 따스한 집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조용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내는 휴일을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스물다섯에 결혼해 이듬해 첫 아이를 낳고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 덕분에 빼박 독박육아로 아이 둘을 키워냈다. 전직 은행원에서 전업주부가 되면서 생긴 자격지심을 육아와 살림에 올인하며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2년을 살고 누리는 사치다.




언제쯤이면 그렇게 여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을지 묻는 수강생분들께 조급해하지 말라는 조언밖에 해 줄말이 없다. 그저 그 시절을 겪어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지금의 역할에 충실하며 아주 조금은 자기 계발에 투자를 하기 바란다. 아이들을 키우며 전쟁 같은 시간 속에도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30대의 나는 초등학교 때도 안 쓰던 하루 생활 계획표를 분단위로 쓰며 시간관리를 했다. 그렇게 만든 시간 속에서 아주 작은 것들을 조금씩 쌓아왔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멀지 않은 미래의 크리스마스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즐기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보자. 치열했던 30대의 내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40대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중이다. 50대엔 함께 쓰고 그리는 지인들과 와인 한잔 곁들인 크리스마스를 꿈꿔 본다. 그런 날을 위해 오늘을 디자인하고 실행에 옮겨본다.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의 길잡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2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꼭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 하나를 만들어 보자.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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