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재 Jan 01. 2024

2024년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돌이켜 보니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글씨다. 결혼하고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살았던 시간은 말 그대로 살아냈던 시간들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살아가는 삶. 작년과 올해의 차이를 모르겠고 내년에 대한 희망도 딱히 없었던 살아내야 했던 삶이다.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는 그런 자리였던 것 같다.




습관처럼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계획을 세웠다. 늘 똑같은 패턴이다. 한 것도 없이 1년이 다 지나갔다는 후회와 내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약간의 두려움 어디쯤에서 12월 31일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똑같이 이야기했기에 후회와 두려움에 대한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자각도 없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나도 그저 평범한 지구인 1에 불과한 사람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그래도 조금 위로가 되는 건 해마다 조금씩 소통의 범위가 늘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언젠가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2009년 전업주부 8년 차에 처음으로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글씨를 쓰는 작은 취미 생활 그게 뭐라고 삶에 생기가 돌았다. 읽고 쓰는 행위 그 자체로 이미 다른 세상을 사는 기분이었기에 더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읽고 책 속의 한 줄을 예쁘게 적어 나눔을 하는 일상이 쌓여갔다. 새로운 삶이었다. 인정받는 느낌이었고 뭐라도 된 듯 경험해 보지 못한 생경한 기분이었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글씨를 쓰기 시작하고 더 많은 배움을 위해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나처럼 글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글씨 이야기로 순식간에 친밀해졌고 서로 배우는 서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는 이 서체를 함께 공부하고 내년 봄쯤엔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자는 계획도 세운다. 소모임도 만들고 우리끼리 챌린지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씨 쓰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공감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글을 찾아 글씨로 전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지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몇 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늘 해오던 후회와 두려움의 연말의식도 잊고 지냈다. 함께 공부하던 이들과 이듬해 배울 글씨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전시회 일정을 잡으며 이미 1~2년 후의 일정이 잡혀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외부 수업 또한 연간계획으로 다음 해 수업일정을 미리 조율한다.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어느 순간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들과의 호흡에 맞춰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장을 했다. 흔히 하는 말로 미쳐서 살았던 시간이다. 미쳐서 지낸 시간만큼 딱 그만큼 성장을 했고, 그만큼 건강에 나빠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게 사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그 일을 오래오래 지속하는 힘은 과속이 아닌 내 몸에 맞는 속도로 꾸준히 하는 것이다. 몰입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천천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가고자 한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오롯이 나를 위한 삶

좋아하는 일에 더 집중하는 2024년을 기대해 본다.



2024년 모두 하쿠나마타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