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와 악필교정
악필도 캘리그라피를 배우면 교정이 될까요?
정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기도 하고 상담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다. 캘리그라피 강사 초년 시절엔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했다. 그 당시 배웠던 글씨도 그렇고 유행하던 스타일의 캘리그라피도 악필교정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캘리그라피를 배우면 글씨 예쁘게 쓸 수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종종 초등학생 자녀를 악필교정 시키고 싶다며 아이를 데리고 상담 오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 절대 캘리그라피 가르치시면 안 된다고 말리기까지 했다. 안 그래도 날아가는 글씨에 당위성을 부여해 줄 뿐이다. 그 시절 나의 캘리그라피는 그랬다.
그때부터 캘리그라피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캘리그라피가 뭘까? 내가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원하던 명쾌한 답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유명한 작가님들이 쓰신 관련분야 책을 사재기하며 공부를 했고, 직접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책을 읽고 작가님들을 만날수록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찾아다니고 공부한 지 몇 년 만에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를 했다.
캘리그라피는 문자를 사용한 예술이다. 문자가 아닌 예술이라는 단어에 포커스를 맞추니 길이 보였다. 예술에 정답은 없고, 정답이 없으니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답이 없는 예술을 찾아다녔으니 늪에 빠질 수밖에. 피카소의 추상화도 미술작품이고 보태니컬도 미술작품이다. 카테고리가 다를 뿐이고 이건 취향의 문제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이해할 수 없고 보태니컬의 섬세함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추상화를 좋아하는 대중이 있고 보태니컬을 좋아하는 대중이 있을 뿐이다.
캘리그라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꽃이라는 글자 하나로 예술을 하시는 작가님이 정답이고, 누구나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글씨로 쓴 작품을 오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또한 취향의 문제다. 그리고 나의 취향은 후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뒤로 가독성 높은 글씨를 쓰기 위해 배움을 이어갔고 이제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면 악필교정이 되냐는 질문에 조금은 다른 답을 하게 되었다.
캘리그라피를 배운다고 악필이 교정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진심으로 악필교정을 원한다면 잘 쓰는 글씨의 공식을 배운 다음 상상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추가되어야 한다. 베이킹 특강 몇 번 받고 레시피를 손에 넣었다고 해서 파티시에가 될 수 없듯 본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강사가 악필을 교정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잡아주고 어떻게 고치면 좀 더 나은 글씨를 쓸 수 있는지 길잡이를 해 줄 뿐이다. 그다음은 본인의 몫이다. 연습과 피드백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본인의 연습량에 따라 코칭을 받기 전과는 다른 글씨를 쓰겠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사투리를 쓰는 지방 사람이 서울에 살면서 표준어를 쓰다가 급하면 구수한 방언이 터지는 것과 같다. 의식하고 쓰면 배운 대로 예쁘고 바른 글씨를 쓰겠지만 급하면 원래의 악필은 다시 등장한다. 상담할 때 악필교정이 완벽하게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다.
정리를 하면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연습을 하면 원하는 상황에서 흡족한 글씨를 쓸 수 있다. 다만 급할 때는 본인의 악필이 소환됨을 주의해야 한다. 원래 악필이지만 필요할 때 각 잡고 쓰면 꽤 잘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지하면 된다. 거기까지가 캘리그라피 강사로 현장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다.
생각처럼 쉽게 교정이 될 글씨였다면 시중에 나와있는 펜글씨 교본 한 권으로 이미 탈출했을 것이다. 악필을 교정한다는 생각대신 바르고 예쁘게 쓰는 글씨를 배워 필요한 자리에서 원하는 글씨를 꺼내 쓸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캘리그라피 강사 14년 차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의 경험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저 오랜 기간 많은 분들을 수업하며 정리한 데이터일 뿐이니 참고만 하길 바란다.
매일 인별그램 해시태그에 악필교정이라는 워딩을 쓸 때마다 바삐 움직이던 손가락은 멈칫하며 고민을 한다. 하지만 움찔하는 양심과 잠시 대치할 뿐 습관처럼 대중이 원하는 해시태그를 걸고 있다. 이제 대나무 숲에 속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볼까 한다.
교정은 어렵지만 필요할 때 원하는 글씨를 쓸 수 있는 수업은 가능하다. 결제하고 클래스를 시작하는 순간 sns에서 봤던 예쁜 글씨가 내 손에서 나올 것이라는 상상은 자제해야 한다. 이런 기대는 빠른 포기와 좌절을 부를 뿐이다.
인십기천
남이 열 번 쓰거든 천 번을 써라.
_뜻밖의 인문학 캘리그라피 / 이규복